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둥지내몰림)
도시환경의 변화로 낙후됐던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 돼 중상류층이 유입되고 땅값, 임대료 등이 상승함에 따라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
※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단어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한 지 수년이 지났다. 많은 전문가들이 문제를 진단하고 행정가와 지자체들도 대응에 나섰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몇몇 '핫 플레이스'에서 진행되던 젠트리피케이션은 이제 레트로 감성과 결합해 '힙하다'라는 명목을 달고, 구도심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헤럴드경제 기획취재팀은 지난 몇년간의 젠트리피케이션 양태를 살피고, 그 부작용을 환기하기 위해 서울을 뜯어봤다. 정보공개청구와 국회의원실 자료요청 등을 통해 서울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단독 입수한 자료를 기반으로 '서울시 행정동별 젠트리피케이션 위험 지도'를 구축했다.
젠트리피케이션 위험지도
서울시내 위험도가 지난 4년 동안 얼마나 증가했는지,
내가 사는 동네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지도를 통해 살펴보세요.
[출처: 서울신용보증재단]
젠트리피케이션 위험지표 검색하기
(행정동기준)
젠트리피케이션 위험지표는 한 지역의 ‘상주인구’와 상점들의 '평균 영업기간'이 줄어들고, '유동인구'나 '프랜차이즈 업체수'가 늘어나면 젠트리피케이션 단계가 심화한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진 지표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2015~2018년 서울시내 424개 행정동의 상주인구, 창·폐업수, 평균영업기간, 프랜차이즈 업체수, 유동인구, 매출액 등 젠트리피케이션과 연관이 있는 6개 변수 데이터를 서울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받아 가중치를 부여해 산출했다.

다만 지표에는 일부 한계가 있다. '행정동'이 특정 상권의 상태를 보여주기에 너무 넓은 구역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종로1,2,3,4가동'로 분류되는 익선동의 경우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하고 있는 지역임에도 행정동 지표상으로는 추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기획취재팀은 서울시내 젠트리피케이션 대표 지역으로 꼽히는 '핫 플레이스' 15곳을 선정해 최근 2년 간 부동산 실거래 매매 내역과, 각 상권별 SNS 해시태그(#) 발생 빈도수 등을 추가로 분석했다.
어떤 동네가 가장 핫할까?
최근 2년 부동산 실거래 매매 통계&2019년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발생 빈도
해시태그 자료 : 마케팅 플렛폼 미디언스
부동산 실거래가 : 등기앱에 기록된 주요 거래(단독・ 다가구 기준)
이렇게 나타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15개 지역 가운데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양태가 분명한 '5곳'의 상권을 선정했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서 총 2000여 건이 넘는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떼어 정밀 분석하는 작업을 실시했다. 이들 지역에서 건물주의 손 바뀜이 얼마나 잦은지, 시세차익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해보기 위한 차원이다.

그 결과 5개 동네에서는 각기 다른 방식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는 과정을 포착할 수 있었다.
임대료 인상, 그리고 색깔을 잃었다…
#경리단길
젠트리피케이션이 훑고 간 상권에 남는 것은 ‘공실’과 ‘쓰레기’들 뿐이다. 치솟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가게들이 장사를 포기하면 거리를 가득 메우던 사람들은 떠나가고, 상권은 특색을 잃는다. 예비창업자들에게 외면받은 상가는 계속 텅 빈 채로 남게 되고, 미처 치우지 못한 집기들은 흉물처럼 방치된다.

경리단길 이야기다.

경리단길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대표하는 동네다. 구옥들이 밀집된 굽이진 좁은 골목길, 세계 각국의 맛집들, 요식업계 셀럽들이 더해져서 유명해졌던 경리단길에 이제 남은 것은 인적이 줄어든 골목길과 빈 가게들 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도 4분기, 경리단길을 포함하는 이태원 지역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6.4%에 달했다. 같은 기간 서울 평균은 8.0%, 이태원은 집계가 이뤄진 서울 45개 상권 중에서 공실률이 가장 높은 동네였다. 현재 경리단길에는 도입부인 경리단 인근의 점포에서부터 불 꺼진 가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지자체가 나서서 홍보하던 대표 맛집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용산구가 지난 2016년 2월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한 경리단길 소재 ‘세계 음식점’ 39곳 중 현재까지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단 6곳 뿐이다. 겨우 12.9%의 가게만이 살아 남았다.

문제는 역시 임대료다. 지난 2015년 1평(3.3㎡)당 4만9575원에 불과했던 경리단길(회나무로13길)의 1층 평균 임대료는 2018년도 2분기 23만5784원까지 치솟았다. 5배 가까이 뛰었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상인들이 경리단길을 떠나면서, 젊은이들로 가득했던 골목길엔 적막만 감돌고 있다.
‘원주민’도 떠나버린
#경리단길
‘원주민’들의 상당수도 동네를 등졌다. 서울시 동별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2015~2019)간 경리단길이 포함된 이태원 2동의 전출은 7973가구, 전입은 6692가구였다. 1281가구가 순감소한 것이다.
반면 그 자리는 '부동산 투자자'들로 채워졌다. 불과 5년새 상당히 많은 부동산 소유주 변경, 이른바 ‘손바뀜’이 이뤄졌다. 경리단길(회나무로, 회나무로13가길 기준)의 등기 건물과 집합건물 316곳 중 62곳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 건물주들은 막대한 시세차익을 봤다. 회나무로 소재 3층짜리 건물의 건물주는 9년 사이 30억6000만원(2006년 24억원에 매입→2015년 54억6000만원에 매도)의 시세차익을 봤고, 인근의 다른 3층짜리 건물 건물주도 7년 사이 28억원(2011년 52억원에 매입→2018년 80억원 매도)을 벌고 ‘엑시트’했다.

상업화의 진행은 실거주민들의 기반시설이 줄어드는 효과도 가져왔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의 ‘상가(상권)분석’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15년과 2019년 4분기를 기준으로 이태원2동에서는 한식/백반/한정식집 18곳(102→87곳), 일반의류점 12곳(18→6곳), 편의점 8곳(19→11곳), 호프/맥주 8곳(28→20곳), 서점·서적·신문소매점 2곳(2→0곳)이 문을 닫았다.
이태원 2동 일대 상가 수 감소 상위 5개 업종
(단위 : 개)
경리단길 전철 밟는 대표적 위험지대
#연남동
연남동 젠트리피케이션 위험지표
연남동은 지난 한 두해 사이 서울에서 가장 '힙한 동네'로 떠오른 지역이다. 낙후된 다세대 주택가였지만, 2010년 공항철도 개통, 2015년 연트럴파크(경의선숲길) 조성 이후 모든게 바뀌었다. 공원으로 다시태어난 옛 철길을 끼고, 감각적이고 개성넘치는 상점과 식당, 카페가 자리를 잡으면서 서울에서 젠트리피케이션 위험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돼버렸다.
젠트리피케이션 지표값
연남동이 단숨에 주목을 받은데는 인근 홍대(서교동)의 영향이 컸다. 홍대의 높아진 임대료를 피해, 젊고 감각 있는 소상공인들이 연남동과 합정동, 상수동, 망원동 등으로 상당수 이주했기 때문이다.
상승하는 홍대 일대 임대료
(3.3㎡당, 1층 월 환산)
자료=서울시
홍대 젠트리피케이션의 의한 이주
빠르게 힙한동네로 떠올랐던 연남동은 최근들어 빠르게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학가라는 특수성 덕에 젠트리피케이션 심화에도 유동인구가 쉽게 줄지 않는 홍대 상권과 달리, 연남동에는 벌써부터 무권리 공실(권리금 없는 상가 건물)이 쏟아지고 있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건물주들의 '손바뀜' 속에 리모델링 공사가 계속 진행되면서, 상권의 본질 경쟁력 대비 임대료가 과도한 폭으로 올라버렸기 때문이다.
누가 떠났고, 누가 돈을 벌었나
#연남동
기존 다세대 주택가가 용도변경을 거쳐 음식점과 상점으로 변신하는 사이, 실거주민과 그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빠르게 밀려났다.
“공실이 많은데도 건물 리모델링 공사 소리는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아요. 임대료는 비싼데 경쟁은 치열하니 1년 사이 가게 주인이 3번 바뀌는 것도 봤어요. 결국 장기적으로는 임차인과 건물주 모두에게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연남동에서 5년째 샌드위치바를 운영중인 조현민(35) 탬파 대표-
“기존 상인들 80%가 나갔어요. 5~6년 새 이렇게 됐죠. 월세가 세 곱절 네 곱절 올라버렸으니까... 세탁소도 열 몇 군데 있었는데 2곳밖에 안 남았어요. 기존에 하시던 분들은 아무래도 연세도 있고 다른데서 뭘 하기도 무섭고 하니까 다 폐업하셨어요.”
-연남동에서 20년째 세탁소를 운영해온 임차인-
연남동에서 돈을 번 사람들은 누굴까. 좋은 타이밍에 건물을 사고 판 사람들이다. 연트럴파크와 동진시장 등 연남동 상권 일대 400여 토지(건물)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 수많은 시세차익 매매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호주에 사는 A(50)씨는 지난 2013년 연남동 382-21번지 건물(땅)을 5억4000만원에 매입했다.

그로부터 5년 후, A씨는 투자금액의 3배가 넘는 17억7000만원에 건물을 팔았다. 시세차익은 12억원이 넘는다.

청담동에 사는 한 부부도 연남동 투자로 ‘대박’을 냈다. 지난 2014년 연남동 383-92, 227-2번지 건물(땅)을 18억원에 사들였는데, 3년 뒤인 2017년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B(36)씨에게 이 23억7000만원에 매도했다. 3년 만에 5억7000만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가 연트럴파크 인근에 건물(땅) 투자한 사실도 확인된다. 신 작가는 표절 이슈로 곤욕을 치르기 전인 지난 2014년 연트럴파크 메인 도로변(행정동상 동교동 소재) 건물을 37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신 작가는 이 건물을 즉각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변경했고 현재 1층에는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카페가, 2층에는 또 다른 카페가 영업중이다.
신 작가 매입 당시(2014년) 이 땅의 개별공시지가는 평(3.3㎡)당 1240만원 선에 불과했다. 5년이 지난 현 시점(2019년 기준) 공시지가는 평(3.3㎡)당 3659만원이다. 공시지가상 가치만 3배로 뛰었다.

인근 부동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신 작가의 부동산 매입에 대해 "좋은 타이밍에 아주 잘 투자한 케이스"라며 "연트럴파크 초입 금싸라기 땅이라 현 시세는 평당 1억원이 훌쩍 넘는다"고 귀띔했다. 이 땅의 대지면적(261.8㎡)을 대입하면 현재 신 작가 건물의 가치는 최소 8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핫플’ 에 들어간 청년사업가들
#익선동
익선동은 레트로 감성이 '폭발'시킨 동네다. 한옥이 나란히 늘어섰던 좁은 골목에 카페·음식점이 터를 잡으면서 젊은 층에 독특한 느낌을 선사했다. 덕분에 낡고 누추했던 한옥거리는 청년 사업가들이 몰려들고,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찾는 '인스타그램 스폿'으로 활기를 찾았다.

익선동의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부동산 개발회사들이다.

'익선다다'는 도시재생기업을 표방하며 익선동에 들어온 회사다. 익선다다의 공동창업자들은 갤러리 겸 카페 '익동다방'을 시작으로 레스토랑 '열두달', '경양식 1920', 중식당 '동북아' 등 한옥의 개성을 살린 공간을 운영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취재 결과 이 곳의 부동산을 사들이며 브랜드를 만들어온 젊은 사업가들이 어느 순간 부동산을 팔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익선다다는 익선동의 랜드마크 '낙원장' 을 만들어 일대 토지와 건물을 지난 2016년 29억7880만원에 매입한 뒤 2018년에 42억원에 팔았다. 그 사이 건물 리모델링이 이뤄졌다곤 하지만 어찌됐든 2년 만에 13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낸 것이다.

익선동 대표 명물 중 하나인 제과점 '밀도' 임원들의 일대 부동산 매입도 눈에 띄었다. 밀도의 지배인인 A셰프는 최근 익선동 166-41번지 땅(건물)을 8억5000만원에 매입했고, 밀도의 모회사 ‘네오밸류’ B대표는 관계사(디티개발유한회사)를 통해 익선동 166-36번지를 43억3000만원에 매입했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여러 사업을 구상해 죽어가는 상권을 살린 것은 충분히 인정할만 하지만 상권 활성화 이면에 숨은 부동산 차익실현을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선다다 - 네오밸류 지분구조
[설명=도시재생 사업체 '익선다다'의 지분을 절반씩 보유한 두 명의 공동대표는 한옥마을 랜드마크였던 '낙원장'을 설립한 인물들이다(그림 왼쪽). '네오밸류' 대주주인 손모 대표는 '더베이커스(밀도)'와 '디티개발'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다(그림 오른쪽).]
재개발을 만난 핫플의 임대인들
#샤로수길
힙지로...젠트리피케이션 갈림길에 서다
#을지로
해시태그, 을지로
지난 5년 을지로3가역 상권은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사무실과 공업소가 입지한 ‘낮의 동네’ 을지로3가역에 인근에 ‘밤 상권’이 형성됐다. ‘호텔 수선화’, ‘카페 한약방’, ‘을지맥옥’ 등 새롭게 들어선 카페와 술집은 을지로의 ‘예스러운’ 경관에 어우러지는 인테리어와 메뉴를 선보였고, 젊은 세대는 이곳 상권을 ‘힙지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힙지로 거리는 1960년대 서울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을지로3가역 북쪽은 청계천공구상가, 남쪽은 인쇄소 거리가 있다. 구옥의 보존율도 높다. 노포(老鋪)도 많은 편이다. 생맥주와 마른안주를 판매하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 평양냉면집인 ‘을지면옥’과 연탄불 소고기가게인 ‘통일집’이 대표적이다.

힙지로의 성장은 을지로3가역을 찾는 전철 이용객 숫자에서 확인된다. 서울교통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31일 이후 시점을 기준으로 오후 6~7시 시간당 하차승객 수가 3000명을 넘은 경우는 총 28회에 달했다. 28회 중 25회는 금요일, 나머지 3회는 각각 현충일과 광복절, 크리스마스 전날이다. 반면 지난해 5월 31일 이전까지는 같은 시간대 을지로3가역 지하철 하차승객 수가 3000명을 넘은 경우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을지로3가역 전철 18~19시 하차 승객수
그런 힙지로도 현재 젠트리피케이션 기로에 서 있다. 배후 상권이 넓다는 점에서 임대료가 인상될 여지는 적지만 '힙지로만의 색깔'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낙후된 구도심과 어우러지는 독특한 분위기는 젊은층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지만, ‘뜨는 거리’를 넘어 오래도록 지속할만한 힙지로만의 개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주도로 시행중인 을지로 도시재생사업도 힙지로 상권의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뇌관이다. 현재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도시재생사업 탓에 평양냉면집인 을지면옥 등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을지로는 청계천 복원 사업(이명박 전 서울시장), 세운상가 철거사업(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당시에도 관(官)주도 재개발로 큰 부침을 겪었던 전례가 있다.
성장은 했는데 콘텐츠는 부족...
#을지로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는 중론이다. ‘을지로스러운’ 특색을 간직한 콘텐츠라 부족하다는 점에서다. 현재 을지로의 거리가 인쇄소와 청계천 공구상가의 예스러움을 인테리어로 따온 것은 큰 장점이지만, 이를 넘어서는 을지로만의 고유한 콘텐츠를 갖지 못한다면 언제든 을지로 상권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최근 진행중인 을지로 도시재생사업도 문제다. 서울시는 3월 초순께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세운지구’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겠단 의사를 밝혔다. 평양냉면집인 을지면옥, 소고기집인 통일집 등은 곧 문을 닫게 된다.

역대 민선 서울시장들이 ‘도심의 노다지 땅’ 을지로 일대의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을지로는 점차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민선 3기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 사업, 오세훈 전 서울시장(민선 4~5기)은 세운상가 철거사업을 추진했다. 박원순 현 서울시장(민선 5기 재보궐~민선 6기, 7기)은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도시 재생과 내몰림의 사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대사회에서 도시는 하나의 생명체다. 자본과 사람이 드나듦을 반복하면서, 도시는 그 외연을 넓히고, 진화한다. 세포가 분열하는 것과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낙후됐던 도심에 자본과 사람이 몰려들면서 활력을 찾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과정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냥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몰림'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우리가 풀어야할 분명한 숙제다.

지난해 가을 서울시가 한성대에 의뢰해 진행한 질적 연구조사에 따르면 서울 중구와 마포구, 경리단길 등의 임차인 응답자 50명 중 39명(78%)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실제 체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체감하고 있다는 39명 중 절반 가량(18명)은 “최근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료 인상을 요구받았다”고 응답했다.
젠트리피케이션 체감도 질적 설문조사
체감하고있다
78%
[자료 = 서울대 및 한성대 , 2019년 10월-11월
‘뜨는 상권(중구,마포구,경리단길 등)’
상인 50명 대상 진행한 질적 연구]
문제는 법에서 정한 보호장치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취재 중 만난 한 임차인은 상가임대료 인상을 연 5%로 제한하는 임대차보호법이 존재함에도, 현실적으로 '을'인 임차인이 '갑'인 임대인에 맞서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건물주가 월세를 5% 넘게 올려 달라기에 '이거는 법적 상한선을 넘는 것 아니냐'고 따졌더니, '좋다. 그러면 법대로 하자. 앞으로 매년 무조건 5%씩 올릴 거고, 나중에 권리금은 받아갈 생각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더라고요."

관(官) 주도의 도시재생사업이 일으키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양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도시재생사업이 성공하면 쇠퇴했던 지역은 다시 활기를 찾겠지만,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기존 세입자들과 임차인들은 과실을 누리지 못하고 내몰릴 수 밖에 없다.

지난 3월 기준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을 벌이고 있는 39개 동네 중 '임대인과 임차인 간 상생협약'이 체결된 곳은 18곳(3월 기준)에 머물렀다. 일부 지자체는 상생협약과 관련된 자료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상생협약이 체결됐다 하더라도 모든 건물주들의 참여를 강제할 수는 없다는 점도 한계다. 성동구 마장동의 경우 188개 건물 중 115곳의 건물주, 종로구 창신동은 19개 건물 중 9곳의 건물주들만이 상생협약에 동참한 상태다. 일부 건물주(임대인)들이 임대 시세를 계속 끌어 올리면 다른 건물주들도 그 시세에 맞추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정도에 따라 상권 전체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는 만큼, 상생협약 참여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조치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2019년 도시재생 상생협약 현황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져오는 또 다른 큰 문제는 부동산 가치의 버블이 궁극적으로 상권을 다시 쇠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거래가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돈을 버는 부동산 입장에서는 건물주든 임차인이든 자주 바뀔수록 좋다. 더구나 기획부동산들은 특정 동네에 터를 잡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해당 상권의 장기적 경쟁력에는 별 관심이 없다. 부동산이 부추기는 계속되는 손바뀜 속에 비싸게 건물을 산 건물주들은 최대한의 임대료를 받아 투자가치를 극대화하려 할 수 밖에 없다.

젠트리피케이션 전문가인 샤론 주킨 브루클린 대학교 교수는 본 기획취재팀과 나눈 이메일에서 "임대료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높아지는 경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자금력이 있는 글로벌 체인들과 은행들 뿐"이라며 "당장은 이들에 의해 거리가 더 화려해지고 부동산의 가치도 오르지만 종국에는 해당 지역의 '문화적 자본'이 상실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대료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거리는 개성이 사라져 획일화되고, 상권은 문화적 자본을 잃고 다시 가치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기획취재 내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공공기관 및 지자체의 인식과 태도에서도 상당한 문제가 느껴졌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자체가 '부정적 이슈'로 인식되는 만큼, 언론에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말을 수시로 들을 수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도시재생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야할 관(官)이, '비난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겨눠질까'만을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국토연구원과 함께 지난 4년 동안의 젠트리피케이션 위험지표를 산출했던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올해는 이 지표를 만들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부정적인 이슈'라는 이유다. 본 기사에 2019년 지표가 빠진 이유다. "서울시나 청와대가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슈화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이야기도 이곳 저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 이슈를 담당하는 한 기관의 직원은 익명을 전제로 "건물주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슈화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우리 사회 의사결정권자 위치에 있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오피니언 리더 중 상당수가 건물주이기 때문에 전향적인 대책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