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연남동에서 돈을 벌었나
마포구 연남동은 지난 몇 년 사이 서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빠르게 진행된 지역 중 하나다. 여러 가구가 세들어 살던 다가구주택은 상가로 용도변경됐고, 유동인구가 늘면서 상가 임대료는 수직 상승했다. 이곳에 살던 원주민과, 그들을 상대로 영업하던 세탁소·미용실 등 영세 자영업자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이렇게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는 사이 '핫'해진 상권의 과실을 누린 이들은 다름아닌 건물주들이다. 물론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맛집 사장이나, 개성있는 인테리어로 SNS에서 유명세를 탄 청년창업가들도 돈을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물주들은 이들로부터 임대료를 올려받으며 상권 발달의 과실을 더 쉽고 편하게 누릴 수 있었다. 아예 건물을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실현하는 방법도 가능했다.

헤럴드경제 기획취재팀이 연남동 일대의 건물(토지) 400여 곳의 부동산등기부등본을 떼어 분석한 결과 실제로 단기간에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누린 사례를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1년 만에 사고 팔아 시세차익 '10억원'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설모(46)씨는 지난 2015년 11월 연남동 390-42번지 건물(땅)을 23억6000만원에 사들였다. 그로부터 1년2개월 뒤, 설씨는 A법인 회사에 33억7000만원을 받고 건물을 팔았다. 14개월 사이 거둔 시세차익은 10억1000만원. 보유한 기간이 짧아 높은 양도소득세를 피하기 어려웠겠지만, 단순 시세차익만 놓고 보면 연 수익률이 37.2%에 달하는 '대박 투자'다.

설씨에게 부동산을 사들인 A회사 역시 1년 반만에 이 부동산을 처분했다. 새 주인은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김모(51)씨. 2018년 6월 김씨가 이 부동산을 매입한 가격은 41억9500만원이었다. 시세차익을 단순계산하면 8억2500만원이다.
[표 설명=헤럴드경제 기획취재팀이 연남동 일대 400여 곳의 부동산등기부등본을 조사한 결과 수많은 단기 시세차익 거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진시장 인근 연남동 228-3번지 건물도 손바뀜이 잦았다. 2014년 3월 강북구에 사는 강모(77)씨가 건물을 매입한 이래 지금까지 주인이 4번이나 바뀌었다. 강씨가 8억6000만원에 사들인 이 부동산은 단 6개월 만에 동대문구에 사는 이모(40)씨에게 11억7500만원에 팔렸다.

6개월 사이 3억1500만원의 시세차익이 생긴 것이다. 세금을 제외한 건물 가치 변동만 보면 연 수익률이 74.3%에 달하는 '대박 투자'다.

강씨로부터 건물을 매입한 이씨의 투자도 성공적이었다. 1년 반을 보유한 끝에 2016년3월 서초구에 사는 박모(44)씨에게 팔았는데, 매매가는 17억3000만원이었다. 단순 시세차익 5억5500만원, 연간 수익률로 계산하면 31.9%다.

서초구민인 박씨 역시 이 건물을 오래 소유하지는 않았다. 단 6개월 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황모(46)씨에게 18억9500만원을 받고 건물주 자리를 넘겼다. 건물주들의 손바뀜 상당수가 '투자'보다는 시세차익만을 노린 '투기'라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이는 거래였다.

신경숙 작가도 연트럴파크변 부동산 매입
연남동이 본격적으로 뜨기 직전 투자해 진득하게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장기 투자자들도 있다.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57) 작가도 그 중 하나다. '연트럴파크(경의선숲길공원)' 메인 도로변 부동산등기부등본을 떼어 전수조사하다 신 작가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명=신경숙 작가가 2014년 매입한 '연트럴파크' 인근 건물 모습(행정동상 동교동). 사진=배두헌 기자/badhoney@heraldcorp.com]
신 작가는 지난 2014년 연트럴파크 메인 거리에 있는(행정동상 동교동 153-32번지) 지하1층, 지상2층짜리 건물(땅)을 37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신 작가가 표절 이슈로 곤욕을 치르기 바로 직전 해다.

원래 주택이던 이 건물은 신 작가 매입 후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변경됐고 현재 1층에는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카페가, 2층에는 또 다른 카페가 들어와 각각 영업중이다.

국토교통부 부동산공시가격 알리미에 따르면 신 작가 매입 시점인 2014년 이 땅의 개별공시지가는 1평(3.3㎡)당 1240만원 선. 5년이 흐른 지난 2019년 기준 이 땅의 공시지가는 평(3.3㎡)당 3659만원에 달한다. 공시지가상 토지 가치가 3배로 뛴 것이다.

인근 부동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신 작가의 부동산 매입에 대해 "연트럴파크 초입의 금싸라기 땅이다. 좋은 타이밍에 아주 잘 매입한 케이스"라고 평가하며 "이 동네에서 그 정도 입지 땅의 시세는 요즘 평당 1억원을 훌쩍 넘는다"고 했다. 신 작가가 매입한 땅의 대지면적(261.8㎡)을 단순 대입하면 현재 가치는 최소 8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무권리 공실 속출하는데 공사 소리는 끊이지 않아"
구도심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는 사실은 젠트리피케이션 위험도가 높아졌다는 신호다. 거리의 상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 상주인구는 줄어들고 유동인구는 늘어난다. 자영업자들의 전체 매출액은 늘어나지만 평균 영업기간은 줄어들고, 창업과 폐업 수도 급증한다. 높아진 임대료와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군 장교 출신의 조현민(35)씨는 연남동이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하던 2015년 미국 탬파배이 스타일의 샌드위치 가게 '탬파'를 연 청년창업가다. 맛집 프로그램에 수차례 소개되며 연남동 내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조씨지만, 그가 내다보는 연남동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설명=연남동에서 5년째 탬파베이 스타일의 샌드위치 바 '탬파'를 운영하고 있는 조현민(35)씨. 사진=배두헌 기자/badhoney@heraldcorp.com]
"대출 끼고 비싼 땅 사들인 건물주들은 당연히 최대한 임대료를 비싸게 받고 싶겠죠. 그렇게 시세가 올라가면 기존 건물주들도 임대료를 올리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조씨의 말이다. 문제는 부동산 중개업소나 건물주들의 바람과는 달리 부동산의 가치가 실제보다 부풀려져있다는 점이다. 이미 연남동에는 권리금 없이 매물로 나오는 상가가 속출하고 있고, 공실도 여기저기 쉽게 눈에 띈다. 조씨는 "이렇게 공실이 많은데도 여기저기서 건물 리모델링을 하는 공사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며 "기존 연남동의 분위기를 만들어온 상인들이 높은 임대료를 못 버텨 떠나면 거리의 특색이 사라지고 결국 (상권이 쇠퇴하는) 안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설명=연남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무권리 다량'이라는 문구가 써붙여져 있다. 권리금 없는 상가 다수가 매물로 나오고 있다는 의미다. 사진=배두헌 기자/badhoney@heraldcorp.com]
연남동의 미래는...

기존 상인들이 빠지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기업형 점포들이 거리를 채우면 상권의 매력은 점점 사라진다. 연남동에도 이미 유명 브랜드 수제버거 가게,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등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연트럴파크' 유명세와 독특한 식당과 상점들의 매력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는 있지만, 언제 경리단길처럼 내리막을 걸을지 알 수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마포구청은 부랴부랴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한국산업관계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받은 '지역상권 상생협력 및 지속가능 발전방안' 보고서를 토대로 올해 계획을 구체화한다는 방침이다. 보고서는 지난해 12월 완성돼 마포구청으로 넘어왔지만 올 초부터 벌어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아직 구체적 계획을 확정하진 못했다는 설명이다.

부동산 전문업체 점포라인의 염정오 과장은 "임차인과 임대인 간 상생도 중요하지만 연트럴파크, 경리단길, 샤로수길 등 이름이 붙여지고 각종 마케팅에 의해 상권이 인위적으로 뜬다는 게 문제"라며 "상권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동선에 따라 자연스레 형성돼야하는 건데 그렇지 않으니 결국 부동산 폭탄 돌리기가 되는거고 그 사이 약자인 임차인들은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배두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