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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최고은과 여섯 작가들
“난 무엇보다도 내가 돈을 벌게 된 것에,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굶어죽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사실에 기뻐했다. 소설가 타이틀을 얻었다는 사실보다 상금을 탔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일년에 몇 차례씩 말 그대로 잔고가 0원으로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앞으로 결혼을 하거나 애를 낳아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작가의 길에 막 들어선 20대 후반의 소설가 김사과가 블로그에 올린 이 고백은 또 다른 ‘최고은’의 기미 때문에 섬뜩하게 느껴진다. 지난주 트위터를 뜨겁게 달군 최고은과 관련된 소설가 김영하의 트위터 절필 선언은 영양실조냐 질병이냐는 죽음의 진실 여부를 떠나 작가의 생활고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이 작지 않다.

21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최한 ‘미디어 정책 대국민 업무보고’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왔다. “방송작가들의 원고료가 턱없이 낮아 능력 있고 똑똑한 작가들이 몇 달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고 만다”며 한 다큐멘터리 작가는 호소했다.

이런 유사 발언은 같은 날 저녁, 젊은 여성작가 7명의 테마소설집 ‘비’ 출간기념 간담회에서도 이어졌다. 개성 있는 작품을 발표해오고 있는 30대 초반의 소설가 윤이형은 “30만원으로 한 달을 버틸 때도 있다. 나는 최대한 안 쓰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얘기들을 88만원 세대의 초상이라거나 “글 쓰는 직업은 원래 배고픈 일이야”란 식으로 일반화해 버리기엔 왠지 씁쓸하다. 비뚤어진 산업구조나 정책적 문제는 하기에 따라 그 간극을 얼마간은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MB정부 들어 문화예술 정책은 소외계층을 없애는 문화 복지에 꽤 공을 들여왔다. 그런데 정작 문화예술을 만들어내는 생산자인 문화예술인들에게선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특히 작가들은 MB정부 이전보다 작품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치켜세우는 콘텐츠 산업의 가장 기본이라는 출판이나 작가 지원은 다섯 손가락에 꼽지도 못할 정도다. 문예진흥기금에서 나가는 문학창작기금 지원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우수 저작 및 출판 지원 정도다. 그것도 문예창작이 아닌 학술이나 교양에 치우쳐 있고 조건도 까다로워 포기했다는 이가 많다. 상황이 이러니 젊은 작가들을 위한 여유는 더더욱 없다.

재원은 한정돼 있고 나눠줘야 할 곳은 많은 건 문화예술 쪽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저쪽에 주던 걸 이쪽에 준다고 불만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수십년을 선택과 집중이냐, 나눠주기냐를 두고 왔다갔다하는 식의 정책도 별무효과다. 무엇보다 정부가 창의적이 돼야 한다.

정부는 지난주 출판문화산업 진흥 정책을 발표하면서 출판진흥기구를 연내에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심의 기능 중심으로 운영돼온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를 확대개편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산업 지원을 한다는 것인데, 이런저런 기구만 자꾸 생기고 커지는 게 걱정스럽다. 기존 조직이나 민간이 해오던 일까지 굳이 정부가 끌어안는 모양새도 그렇다. 더 안타까운 건 정작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그렇게 모래 속에 물 스미듯 없어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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