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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제3부 전원일기 <35>7월 장마와 태풍, 땡볕 속에서도 작물은 영근다
자연은 마치 어머니처럼 인간을 품어주지만, 때론 시련을 주기도 한다. 장마와 태풍, 그리고 폭염이 찾아오곤 하는 7월의 전원이 그렇다. 장마기간 폭우가 쏟아지면 혹시나 산사태나 침수피해를 입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이게 된다. 또한 태풍이 오면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작열하는 가마솥더위는 전원의 여름나기를 더욱 힘겹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고비를 하나씩 넘기면서 작물은 여름기운을 받아 제대로 영글어 간다. 사람의 전원생활 또한 한층 지혜로워진다. 시련이 닥치기 전에 미리 준비하되, 피할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 대처한다. 나머지는 자연에게 믿고 맡기는 현명함에 눈뜨게 된다.

▶장마철이 주는 교훈

필자가 살고 있는 강원도 홍천군 홍천강 상류인 내촌천은 장마철이 되면 비로소 강다운 위용을 되찾는다. 가뭄 때는 졸졸 흐르는 개울처럼 여겨지던 하천이 집중 폭우가 쏟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성난 강의 모습으로 돌변한다. 갑자기 불어난 흙탕물이 노도와 같은 기세로 주변을 휩쓸어버린다. 이 때 잠수교 형태의 낮은 다리는 물에 잠기거나 심지어는 유실되기 때문에 강 건너 마을의 경우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7월의 전원풍경

만약 전원입지를 구하러 다니고자 한다면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철에 땅을 보아야 한다. 쾌청한 날만 골라 답사를 다니면 장마철에 도사리고 있는 이런 위험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주변 풍광만 보고 덜컥 강변이나 계곡가의 땅을 산 뒤에 집을 짓고 살아보고서야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되지만 이때는 너무 늦었다. 땅치고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다.

강변과 계곡가의 저지대 땅은 요즘처럼 기상 이변에 따른 폭우가 빈발한 상황에서는 자칫 심각한 수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보기에 좋은 땅’이 아니라 ‘살기에 좋은 땅’을 골라야 한다. 살기 좋은 땅이란 기본적으로 자연재해로 부터 안전한 땅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답사에 나서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답사의 불편함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실제 전원생활에서 겪게 되는 불편함은 어떻게 견디어낼 것인가. 이런 날 시골 부동산중개업소를 찾아가면 대부분은 문이 잠겨있고, 열려있다고 해도 매물로 나온 땅을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이 깨져 오히려 땅 매입을 포기하는 등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장마 때 땅을 보러 다녀야 한다. 그 땅이 과연 살만한 곳인지 본인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장마철 불어난 강물의 모습

▶전원생활의 지혜

장마기간 내리던 비가 잠시나마 그치면 전원은 다시 산뜻한 모습을 드러낸다. 형형색색의 각종 들꽃이 만발하고 물안개가 푸르른 산을 휘감으며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하지만 전원의 보금자리는 장마철 높은 습기로 인해 생활하기가 매우 불편해진다. 강변이나 계곡가에 지어진 집들은 더욱 그렇다. 칙칙한 거실과 방에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도 많다.

필자가 살고 있는 강원도 홍천의 집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남향 터에 위치하고 있다. 저 멀리에 홍천강 상류인 내촌천이 휘감아 흐른다. 그런데도 장마철 습도가 매우 높다. 이 때문에 도시의 아파트와는 달리 시골 전원주택의 경우 제습기가 필수다. 장마철만 되면 선풍기와 함께 제습기를 가동한다. 또 폭우로 인해 침수된 길을 정비하고, 배수로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장마철에는 폭우로 인해 경사지의 밭과 마당의 경우 갑자기 생긴 물길로 인해 땅이 깊게 패고 토사 유출도 빈번하다. 이런 경사지에는 벌개미취를 심으면 좋다. 경사지에 벌개미취를 심으면 그 뿌리가 흙을 잡아주기 때문에 호우가 내려도 흙의 유실을 막아준다. 벌개미취는 번식력이 왕성해서 심어놓으면 이듬해 금방 퍼진다. 연보라색 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고 은은한 멋이 있다.

산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다 보면 자연스레 머리털과 수염이 덥수룩한 ‘절반의 도인’이 된다. 사실 깔끔하게 용모를 손질할 필요도, 그럴 시간도 없다. 그래서 필자는 종종 아내에게 머리손질을 맡기곤 한다. 이발료도 절약되고 읍면 중심지까지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 귀농·귀촌하려는 이들의 경우 미용 기술을 배워오면 여러모로 좋다. 남편과 아이들의 머리손질 뿐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에게 봉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골인심이란 게 신세를 지면 어떤 방식으로든 되돌려준다. 미용봉사를 다녀오는 날, 아내의 손에는 항상 작은 농산물 보따리가 들려있다.

폭우가 내린 뒤 물안개는 높은 습도를 유발한다

▶풍성한 여름 식탁

7월에는 그동안 정성껏 키운 감자와 옥수수를 수확해 바로 먹는다. 감자와 옥수수는 여름철 건강에 좋은 훌륭한 대용 식사가 된다. 자연 식탁이자 건강 식탁이다. 오이와 고추, 가지, 호박, 토마토 등도 쏟아져 나온다. 여름 식탁은 더욱 풍성해진다. 싱싱한 여름열매보다 더 좋은 건강 상차림이 어디 있을까?

필자가족은 7월 중순이 되면 밥 대신 밭에서 갓 따온 옥수수를 즐겨먹는다. 어떤 날은 점심을 옥수수로 때우고도 저녁 때 또 먹는다. 행여 손님이라도 오게 되면 역시 옥수수를 쪄서 대접한다. 풋풋하고 달콤하고 쫄깃한 찰옥수수(홍천 찰옥수수는 유명하다)는 두 끼를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옥수수는 따는 순간부터 당이 탄수화물로 바뀐다고 한다. 따는 순간이 가장 달고 맛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단맛이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옥수수를 쪄먹으려면 먼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물부터 올려놓고 옥수수를 따러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룻밤만 지나도 그 맛이 다르다. 자기 손으로 농사지은 사람만이 그 진정한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싱싱한 여름선물이다. 지인이나 친인척에게 보내려면 딴 옥수수 자루를 다듬지 말고 그대로 포장해야 그나마 단맛과 찰진 맛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여름 별미는 이외에도 많다. 6월에 수확한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냉동시켜두었다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에 이를 해동해 매실효소와 섞어 ‘오디매실주스’를 만들어먹는다. 사실 오디는 맛은 조금 밋밋한 편인데 여기에 새콤달콤한 매실효소가 가미되면 환상의 맛 조합이 탄생한다. 더울 때 마시면 더욱 시원하고 맛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시원한 먹거리 아이디어도 총동원된다. 필자의 집에서는 팥빙수 대신 간단하게 ‘팥빙유’를 만들어 먹는다. 먼저 냉동고에 얼린 우유를 긁어낸 다음 살짝 얼린 팥 앙금을 그 위에 얹는다. 그런 다음 싹싹 비벼 먹으면 그 순간 무더위는 싹 달아난다.

강원도 산골에서의 여름철 외식은 단연 막국수가 최고다. 가끔 이웃이나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막국수 외식을 한다. 홍천의 경우 옥수수를 재료로 한 올챙이국수와 감자전도 별미다.

수확해 바로 찐 찰옥수수

▶농업에 대한 생각

장마와 태풍이 심술을 부리는 7월에는 수확중이거나 수확을 앞둔 농작물 관리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애써 지은 농사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장맛비와 뜨거운 햇살을 받고 들녘의 곡식은 제대로 익어간다.

매년 이맘 때 폭우와 바람에 쓰러진 옥수수를 일으켜 세우면서 매번 농사에 대한 생각을 다잡곤 한다. 필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 유기농업, 더 나아가 자연농업을 고집한다. 자연의 이치대로 거두어 자급하고, 남는 게 있으면 팔아서 소득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친환경 유기농업만 하더라도 너무도 돈이 안 되기에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또 겉으로는 유기농업이라지만 농약을 뿌리는 등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심지어 수년간 유기농업에 매달렸다 매번 실패하자 “친환경 유기농업이나 자연농업은 모두 다 사기일 뿐이다”라고 극단적인 항변을 하는 이도 보았다.

무슨 농법이든 간에 문제는 돈에 대한 욕심이다. 친환경 유기농업을 하더라도 돈에 욕심을 내면 결국은 양심을 속일 수밖에 없다. 오늘의 농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농산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찍어낸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 다를 게 없다.

농업전문가나 베테랑 농부들은 대개 “농사의 성패는 풀과의 전쟁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풀을 잡기 위해 제초제를 남발한다. 밭을 덮어씌우는 검정 비닐 뿐 아니라 아예 씨앗이나 모종을 심는 구멍이 뚫린 부직포까지 나와 있다. 이렇게 하면 수확을 많이 거둘 수는 있겠지만, 생태계 차원에서 보자면 이는 땅과 작물에 대한 학대에 가깝다.

땅을 살려야 인간도 살 수 있다. 땅과 인간이 공존하는 친환경 농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를 실천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수확한 옥수수와 감자

▶소서와 대서

소서(小暑, 7일)는 ‘작은 더위’라는 뜻으로 이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더위에 진입한다. 또한 예로부터 이 시기는 장마철로 불렸다. 장마전선이라는 불연속전선이 한반도 중부지방을 가로질러 장기간 머무르기 때문에 습도가 높고 비가 많이 내린다.

이때는 또 하지 무렵에 모내기를 끝낸 모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시기로, 김을 매거나 피사리(‘피’라는 잡초를 뽑는 일)를 해 준다. 보리를 베어낸 자리에는 콩이나 조·팥을 심어 이모작을 하기도 한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여서 호박이나 각종 채소가 나오는 등 계절음식이 제철을 만나 입맛을 돋워준다.

대서(大暑, 23일)는 소서와 입추(立秋) 사이에 든다. 중복(中伏)을 전후해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이다. 그러나 때때로 장마전선이 늦게까지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있으면서 큰 비가 내리기도 한다.

대서는 중복 무렵일 경우가 많으므로, 삼복더위를 피해 술과 음식을 준비해 계곡이나 산정을 찾아가 노는 풍습이 있다. 불볕더위, 찜통더위도 이때 겪게 된다. 참외, 수박, 채소 등이 풍성하고 햇밀과 보리를 먹게 되는 시기로 과일은 이때가 가장 맛있다.

<박인호 전원 칼럼리스트>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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