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럴드포럼] 5030으로 줄이면 사람이 보인다

1만3429명 대 3349명. 각각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으로 내달리고 있던 1991년과 지난해 교통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은 사람의 숫자다. 국가 정책의 목표를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맞추고, 교통 정책도 자동차를 최대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니, 지금 보면 충격적인 1991년의 숫자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교통사고가 한국인의 사망 원인 중 3위 안에 들던 시기였다. 주변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교통사고가 사망 원인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등 상황이 많이 바뀌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서울, 부산 등 대도시를 다니다 보면 도심의 제한속도가 시속 50㎞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안전속도 5030’이라는 도시부 속도 하향 정책이 가져온 변화다. 안전속도 5030은 도심의 일반도로와 주택가의 생활도로의 제한속도를 각각 시속 50㎞와 30㎞로 낮추는 정책이다.

우리가 교통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은 이미 1960년대부터 도심의 제한속도를 시속 50㎞ 아래로 운영해 왔다. 이들 나라는 2000년대 들어 많게는 절반 이상 교통사고 사망자를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우리나라도 2017년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하향한 68개 구간에서 사망자가 64%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5030정책’의 슬로건처럼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이는’ 것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차가 보행자를 충격할 때 속도가 시속 60㎞에 다다르면 사망 확률이 거의 100%에 이른다고 한다. 주행속도를 시속 50㎞로 낮추면 사망율이 50%, 30㎞일 때에는 10% 이하로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970년대 근대적 도로교통체계가 확립된 후에도 우리의 제한속도는 시속 60㎞였다. 우리는 그동안 보행자의 안전을 담보로 많은 것을 이뤘던 것은 아닐까.

안전속도 5030을 추진하면서 가장 흔하게 듣는 비판은 요즘 도로 사정과 자동차 기술을 감안할 때 시속 50㎞는 너무 낮다는 것이다. 속도를 낮춰 사망자를 줄일 거면 차라리 제한속도를 시속 10㎞로 하자는 비아냥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자신을 보행자가 아닌 운전자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는 보통 교통사고라고 하면 차와 차가 충돌하는 그림을 떠올리지만,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4명은 길을 걷던 보행자다. 이러한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약 2배에 달한다. 어린 시절 학교 가는 손자에게 “차 조심하라”던 할머니의 가르침이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눈부신 기술 발달로 차를 타고 있는 운전자는 점점 안전해지고 있지만,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보행자는 법과 제도의 보호를 통해 안전을 확보할 수 밖에 없다. 이는 2016년 OECD가 우리나라 도심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낮춰야 한다고 권고한 배경이며, 경찰청이 교통안전정책의 중심을 차량에서 보행자로 전환해 추진하고 있는 이유다.

‘차에서 내리면 당신도 보행자’라는 표어가 있다. 골목길에서 어린 자녀를 데리고 걷다가 빠른 속도로 옆을 지나치는 차량을 보며 화를 낸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차량의 운전자는 법을 무시하고 질주하는 악당이었을까, 아니면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도, 아이를 데리고 걷는 보행자도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진규 경찰청 교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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