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읽기] 나훈아의 길, 혜민의 길

지긋지긋한 코로나19에 포박된 탓일까. 세상은 카리스마 넘치는 ‘센 형님’들에 빠져들고 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객(檢客)’ 윤석열은 단숨에 차기 대선 후보 1위에 올려졌다. “나는 특정인을 위해 노래하지 않는다”며 재벌과 북한 최고권력자(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초대를 뿌리쳤던 가수 나훈아는 지금 연예계 대통령이다. 그는 예수가 태어나기 500년 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형이라 부른다. 그렇게 부른 ‘테스형’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1000만회를 돌파했다. 유명 연예인들이 패러디한 테스형 사투리 버전은 유튜브를 강타하며 ‘빅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콘서트 티켓은 예매 시작 9분 만에 동났다.

15년 만의 방송 공연으로 화제를 모은 지난 추석 ‘KBS 단독 콘서트’가 말해주듯 나훈아는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신비주의’란 타이틀이 그래서 붙는다. 그는 완벽한 무대가 아니면 오르려 하지 않는다. 독서와 여행, 명상으로 영감을 차곡차곡 쌓는 축적의 시간을 거쳐 새 노래를 발표한다. 70대 중반의 나이에 테스형 같은 트렌디한 신곡을 내놓는 힘이 거기서 나온다. 나라가 주려는 문화 훈장도, 그 무게에 눌리면 창작혼이 제한된다며 고사하고 있다. 무대에 드물게 서는 만큼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압도적이다. 70대 나이가 믿기지 않는 괴력같은 성량과 가창력, 와이어 액션이 수놓는 현란한 볼거리, 스펙터클한 무대장치,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가자”며 자기주도적 삶을 설파하는 철학자적 면모까지….

나훈아의 대척점에 ‘희대의 라이벌’ 남진이 있다. “남진이야 나훈아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만큼 어려운 질문이다. 남진은 늘 팬들이 손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팬들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간다. ‘빈잔’, ‘둥지’, ‘나야나’ 등 신곡을 주기적으로 내놓으며 팬들을 즐겁게 한다. 트로트가 대세인 요즘은 틀면 나올 정도로 방송 예능 출연이 잦다.

나훈아·남진만큼이나 혜민과 현각 스님의 삶의 궤적도 다르다. 둘은 하버드대에서 동문수학한 학승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혜민은 세상으로 나와 아픈 영혼을 치유하는 힐링과 명상에 몰두했고, 현각은 참선과 수행의 길에 매진하는 선승의 길로 갔다. 혜민은 안정적인 대학교수직(종교학)을 버린 이유에 대해 “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잘해야 50명을 가르치고, 논문을 써도 소수만이 보지만 마음치유학교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상처를 위로할 수 있다”고 했다. ‘무소유’의 법정이 책으로 아픈 영혼들을 보듬었다면 그는 SNS, 명상앱 등을 활용해 소통해 왔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걸맞은 방식이다. 시답잖은 방송 예능에까지 등장해 연예인 다됐다는 비판을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현각으로부터 “불교 팔아먹는 기생충”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곧바로 둘이 화해하고 현각이 “혜민은 내 영원한 도반”이라고 해 다행이다.

세상과 한발 떨어져 큰 깨달음에 몰두하는 현각은 나훈아가 완벽한 무대를 추구하는 것과 닮아 있다. 반면에 중생이 손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온 혜민은 어느 무대든 팬들이 원하면 달려가는 남진을 연상케 한다. 어느 삶이 옳다 할 수 없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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