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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도종가] 배려의 미학 운조루, 곳간 연 문화류씨 귀만와종가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문화류씨 귀만와종가의 운조루 안채 2층 다락방은 없어도 될 방이지만, 집안 여성들과 노모가 앉아서 바깥 풍광을 구경할 수 있도록 배려해서 설계한 것이다. 이곳은 지리산 노고단 남쪽 형제봉과 왕시루봉 아래에 있고, 섬진강 너머 오봉산을 마주보는 명당으로 평가된다.

문화류씨 귀만와종가의 운조루 안채 2층 다락방은 여성들의 조망권과 휴식권을 배려한 곳이다. [남도일보 제공]
구례 문화류씨 곤산군파 귀만와종가의 종손(오른쪽)이 남도종가의 진면목을 발굴해 세상에 알린 남도일보 서정현 본부장과 대담하고 있다.

자연과 어울리는 인간의 공간미학, 힘겨울때 곳간을 과감하게 여는 나눔정신으로 유명한 이 종가의 후손 류정수씨는 “분수를 알고, 인간을 존중하는 선비정신, 효제정신, 겸애정신을 지켜내고 싶다”며 종가체험캠프와 민박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섬세한 배려의 미학, 나눔의 고택, 구례 운조루를 지은 귀만와 류이주(柳爾胄,1726∼1797)가 문경새재에서 채찍으로 호랑이를 쫓아낸 대구 입석동 출신 무관이라는 점은 이채롭다.

어릴적 자라면서 정통학문 보다는 세상만물과 어울리는 것에 관심이 더 컸다. 사냥도 하는 등 ‘호기심 천국’이었던 류이주는 서울에 올라가 견문을 넓히다 문과를 포기한 채, 무과에 응시했는데, 총융사 홍봉한이 정조에게 문경새재 호랑이 일화를 들려주면서 어려운 무신 벼슬길 관문을 통과한다. 행정과 건축 등에도 능해, 문리양도의 자질을 보이던 류이주는 낙안(순천)군수를 지내다 일이 좀 어그러지면서 그만두게 되자, 다시 여행자가 된다.

그리고는 지리산 끝자락 전남 구례군 오미리에 이르러 무릎을 탁 친다. 당시 풍수에 의하면, ‘미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형상’, 금거북이 등 다섯보배들이 모인 명당이었고, 류이주는 7년간 조선의 건축미학을 총동원해 운조루 등을 지으면서 문화류씨 귀만와종가를 열었다. 그는 영·정조의 부름에 따라 수원화성, 함흥성 축성하는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고 전해진다. 나중에 오위장, 풍천부사, 용천부사 등을 역임한다.

운조루 앞 연못과 소나무 섬. 여름이면 연꽃이 만개한다.

미학도 미학이지만 배려까지 담긴 운조루 고택이다. 전라도에서 흔치 않았던 ‘□’형 구조, 안과 밖의 크고 작은 사랑채, 길손에게 내주는 24칸 행랑채, 여성의 조망권을 배려한 2층 다락과 창문, 풍수설을 반영한 부엌위치, 굶는 사람을 배려한 낮은 굴뚝, 노인과 수레가 드나들 수 있는 경사로 돌길 등이 그렇다.

가문을 보호하기 위해 대문 윗쪽에 호랑이 뼈가 걸어둔 고택 입구를 지나 곳간에 가면 뒤주에는 ‘누구든 열어 가져갈수 있다’는 뜻의 ‘타인능해(他人能解)’가 적혀있다. 나눔의 상징이다. 쌀 세가마니 용량의 뒤주는 자판기처럼 손잡이를 밀면 소량의 쌀이 쏟아져 나오고, 마을 주민은 이를 가져갈 수 있다.

누구나 열어 곡식을 가져갈 수 있도록 타인능해라고 적어두었다.

다 나눠줘서 운조루 가솔도 끼니를 걱정할 때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소나무껍질 끓인 죽 ‘송쿠죽’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경남 하동과 접경지에 있는데, 중부,영·호남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

문화류씨 시조 류차달은 후고구려 사람으로, 황해도 구월산 동남쪽 문화지역에 살던 중 왕건이 곤경에 빠지자, 수레 천량으로 군량을 조달해 승리를 도왔다. 왕건이 수레차(車) 다다를달(達)이라는 이름을 손수지어줬다. 고려의 최고 명문가이다.

조선개국 무렵, 후손 류익정은 이성계로부터 국경 확장의 공을 인정받아 부원군에 오르는데 그가 곤산군파의 파조(派祖)이다. 류이주는 곤산군파 31대손이다.

구례 문화류씨 곤산군파 귀만와종가와 운조루 전경 [한국관광공사 제공]

기록유산도 빛난다. 류이주의 고손자 류제양(1846~1922)은 매천 황현과 교유하며 1만 편의 시를 지었다.

종가의 수많은 이야기는 류제양이 6세부터 70년간 쓴 일기 ‘시언(是言)’과 그의 손자 류형업(1886~1944)의 40여년간 일기 ‘기어(紀語)’를 통해 전해진다. 구한말 조선의 풍습과 근대화 시기 사회변화를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전남도는 국가 문화재 지정을 기대하고 있다.

귀만와종가는 전적·고문서류 352종 811책, 676건 등 기록물과 김정희가 쓴 편액·병풍·그림·글씨·수레바퀴 등 민속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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