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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진정성 없이 쏟아내는 뒷북 사과, 통과의례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남인순 의원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에 대해 잇달아 사과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고 박 전 시장 비서실 여직원에게 한 행동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자 떼밀리듯 부랴부랴 내놓은 것이다. 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사과 입장을 표명했고, 이와는 별도로 민주당 여성위원회도 비슷한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민주당이 사건의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공개적으로 처음 적시한 것도 이번 사과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박 전 시장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만시지탄이나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민주당이 이제라도 당 차원에서 사과를 표명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남인순 의원도 뒷북 사과 대열에 합류했다. 남 의원은 사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용어로 지칭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남 의원은 이에 대해 “저의 짧은 생각으로 피해자가 더 큰 상처를 입게 됐다”고 사과했다.

문제는 민주당과 남 의원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결코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 측의 줄기찬 요구에 미동도 하지 않았던 민주당이 아닌가. 사과는 고사하고 박 전 시장 성범죄 사건이 터지자 거꾸로 가해자를 두둔하기 바빴다. 이 과정에서 피해호소인이란 해괴한 말로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데 앞장선 것도 민주당이다. 당시 이해찬 대표까지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민주당이 진심으로 사과를 하려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는 등 혹독한 자기반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남 의원의 사과는 ‘사과를 위한 사과’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남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여성계의 대모’다. 그러기에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여성의 권익과 인권 문제라면 두 발 벗고 나서야 할 그가 되레 2차 피해를 조장하는 데 앞장섰다면 그 책임은 달랑 사과문 한 장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의원직 사퇴 등 후속적 조치가 이어져야만 비로소 진정성이 인정될 것이다.

정치권 사과의 진정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위기가 닥치면 일단 회피하고 막다른 상황에 처해야 비로소 사과하는 게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당장 며칠 전만 해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사과가 그랬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정치권과 정치인이 신뢰를 받을 수 있다. 후속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 민주당과 남 의원의 사과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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