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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리디아 고의 예선탈락과 부정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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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고가 메이저 대회인 KPMG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예선탈락했다. LPGA투어에서 계속된 53개 대회 연속 컷통과 기록이 중단됐다. 아마추어 때인 2012년 LPGA투어 첫 경기인 호주여자오픈부터 계속된 대기록이 멈춘 것에 대해 미국 언론은 “완벽함이 깨졌다”고 헤드 라인을 뽑았다.

하지만 모든 대회에서 컷을 통과하는 선수는 없다. 그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신(神)의 영역이다. LPGA투어에서 메이저 10승을 포함해 통산 72승을 거둔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도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97년 US여자오픈에서 컷오프된 뒤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펑펑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이 장면은 중계 카메라에 잡혀 방영됐고 팬들의 측은함을 샀다.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리디아 고의 ‘정직’이다. 리디아 고는 대회 첫날 13번홀 그린에서 어드레스에 들어간 뒤 볼이 움직였다고 자진신고해 1벌타를 받았다. 그 벌타만 없었다면 리디아 고의 연속 컷통과 대기록은 깨지지 않았을 것이다. 1타차로 예선탈락 했기 때문이다. 리디아 고는 지난 1월 개막전인 코츠 골프 챔피언십에서도 똑같은 상황으로 스스로에게 벌타를 부과해 1타차로 우승을 놓쳤다.

정직은 스포츠맨십의 다른 말이다. 리디아 고는 벌타를 받은 상항에 대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규칙이 맘에 들지 않지만 규칙이 생긴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디아 고는 18세의 어린 나이지만 규칙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것이 스포츠맨십이란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 자신이 이룬 업적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듯 하다. 훌륭한 선수다. 유혹을 물리친 사람은 맑은 영혼을 유지할 수 있다.

리디아 고의 정직함을 굳이 거론하는 이유는 그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수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미 유명 스타가 된 선수들 중에도 과거 남의 눈을 속이고 부정행위를 한 선수들이 여럿 있다. 그들의 명예를 위해 실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들은 스포츠맨이 아니었다”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 어찌 보면 그들은 명예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 여자골프를 더럽힌 부정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OB가 난 볼을 지인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페어웨이로 던져주거나, 지인들을 동원해 경쟁자의 경기를 악의적으로 방해하는 등 그 수법은 지능적이고 교활했다. 동전치기나 알까기 정도는 이런 사례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과거 한국 대회에 초청출전했던 아니카 소렌스탐은 이런 봉변을 당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 갤러리의 저급함을 성토한 적이 있다. 소렌스탐은 자기 딸을 우승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자신을 방해한 무리가 있었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위의 사례를 통해 부정행위로 혜택을 받은 선수들은 이를 모른 척했다. 그리고 우승의 달콤함을 즐겼다. 거액의 우승상금을 챙겼고 미디어 가이드에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 기록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그 우승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스포츠맨십을 돈과 바꿔 버렸고 스스로를 ‘껌’으로 만들고 말았다. 골프는 골퍼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기에 외로운 운동이 맞다. 매일 매일 스코어로 평가 받아야 하니 어찌보면 외로움을 넘어 잔인하기까지 하다.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

골프는 젠틀맨의 게임이다. 자신의 명예를 정직으로 지키는 게임이다. 한국 선수 중에 유독 부정 행위자가 많은 이유는 ‘성적 지상주의’ 때문이다. 집안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투자되고 있기에 그에 걸맞는 성과를 내야 하는데 뜻대로 안될 경우 룰을 어기고 남의 눈을 속이게 된다. 예선탈락한 날 부모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이라면 ‘알까기’가 생존 전략일 수 있다. 이런 풍조는 초등학생 주니어 골퍼부터 성인이 된 프로들까지 만연되어 있다. 어릴 때 안 맞으려고 부정행위를 하던 아이가 커서 프로가 된 결과다.

이는 비단 우리 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골프매거진이 2년 전 PGA투어 캐디 50명에게 선수들의 부정행위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무려 27명(54%)이 "선수들이 룰 위반행위(속임수)를 목격했다"고 대답했다. 작년 PGA투어 선수 50명을 대상으로 한 무기명 설문조사에서도 19명(38%)이 동료선수의 룰 위반행위를 목격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금권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인류 전체가 혼탁해 지는 느낌이다.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리디아 고의 자신신고 벌타가 뉴스가 되는 세상은 무언가 심하게 ‘비정상적’이다. [헤럴드스포츠=이강래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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