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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T캡스에서 만난 사람]행복한 유랑생활 정창기 KLPGA 경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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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기 KLPGA경기위원장은 무전기로 위원들과 대회 상황을 수시로 파악한다.


정창기(62)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경기위원장은 상반기는 4월부터 7월까지, 하반기에는 매주 대회가 열리면서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어떤 때는 한달 내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객지 생활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여자선수들이 세계 무대를 누비는 걸 보는 게 보람이고 자부심이지요.”

지난해 KLPGA 경기위원장에 부임한 이래 2년째이지만 그는 좋아하던 골프를 끊고 선수들이 골프를 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애쓴다. 마치 골프 대디가 자신의 골프를 끊듯, 코스를 세팅하고 대회를 준비하는 데 열중하면서 정작 자신이 클럽을 잡아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1985년에 골프를 시작해 30년 구력에, 베스트스코어는 3언더파 69타까지 쳐 봤지만 경기위원장이 되면서 집에 있는 클럽에 거미줄이 쳐질 정도다.

울산 토박이라서 KLPGA경기위원장이면서 동시에 울산시 골프협회장에 대한골프협회(KGA) 감사를 맡고 있다. 2년간 어떤 선수보다도 먼저 코스를 답사하고, 선수들의 세밀한 기량까지 가려내도록 코스를 정교하고 엄밀하게 세팅하고, 대회가 마무리되면 다음 대회장으로 이동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어찌 보면 떠돌이 생활이지만 그건 스스로 정하고 보람을 얻는, 행복한 유랑생활이다.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를 누빌 수 있는 것에 일조한다는 뿌듯함을 가지기 때문이다.

- 이번 대회 코스는 어떻게 세팅했나? 고덕호 해설위원이 “정 위원장은 20언더파까지 나올 수 있다”고 했는데?
시즌 막바지 대회이고 예선 탈락 없이 80명 내외의 선수가 출전하는 만큼 쉽게 버디가 많이 나오도록 코스를 세팅했다. 선수들이 올 한해 바쁜 스케줄로 고생했으니 마지막 두 대회는 편안하게 뛰어난 기량들을 발휘하도록 한 것이다. 다음 대회도 마찬가지일 거다. 팬들도 즐겁게 관람하시길 바란다.

- 대회마다 세팅을 다르게 한다고 하는데 외국과 비교하면 올해 어떤 특징들이 있었나?
우리나라 대회 코스가 일본, 미국의 메이저 대회보다 결코 짧지 않다. 한번 비교해도 좋다. KLPGA 코스가 더 길고 어렵게 세팅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려운 코스에 단련되면 해외에 나가 어떤 코스에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반대로 쉬운 코스에 익숙하면 어려운 코스에서 헤맨다. 한국 선수들이 외국 무대에서 쉽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게 기량이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그런 코스에 잘 단련되어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지난해 국내 무대를 뛰던 김효주는 핀 위치가 어렵다는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지난해 국내무대에서 뛰었던 김세영도 올해 미국 무대에서 곧장 3승을 올리지 않았나. 전인지는 올해 미국, 일본에서 메이저 3승을 했다. 그건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KLPGA를 ‘LPGA사관학교’라고 부른다.

-코스는 골프장마다의 특징 아닌가? 경기위원장이 코스를 만드는 것인가? 올해를 되돌아보면 그렇게 특징지어진 대회가 어떤 것이 있나?
일단 해외의 메이저를 보자. 마스터스는 ‘유리알처럼 빠른 그린’, 6월의 US오픈은 ‘깊은 러프’, 브리티시오픈은 ‘바람과의 싸움’, PGA챔피언십은 ‘8월의 무더위’로 특징지어진다. KLPGA의 메이저급 대회도 그렇다. 두산매치플레이 대회는 유일하게 매치 방식으로 열린다. 그래서 항상 그린이 가장 빠르다. 올해는 스팀프미터로 측정하니 4.2m까지 나왔다. 평균 4m인 마스터즈보다 빨랐다. 지난 주 드비치가 4.1m였다. 이수그룹KLPGA선수권은 퍼팅 그린의 난이도로 승부했다. 핀 위치를 가장 까다로운 곳에 꽂았다. 그래서 마지막날 언더파는 3명밖에 안 나왔다. 우승한 안신애 선수는 특별했다. 예선 통과는 꼴찌로 했는데, 마지막날 신들린 듯 5언더파를 쳤다. 핀을 구석구석에 꽂아도 기막히게 버디를 잡아냈다. 핀을 어렵게 꽂는다 해도 규정은 있다. 그린 가장자리에서 4야드 떨어져야 하며, 반지름 1m 안에서는 볼이 움직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홀을 정할 때 위원들이 볼도 직접 굴려본다. 대신 그 범위를 벗어나면 브레이크가 심한 곳에 꽂아 난이도를 조정한다. KB금융 스타투어 챔피언십은 변별력을 주기 위해 파5 홀을 파4로 변경해서 파71 코스로 치렀다. 이 홀이 올해 가장 어려운 홀이 됐다.

- 코스 세팅을 하려면 잔디나 코스관리에 대해서도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그린 스피드는 연습 라운드 때는 3에서 3.2m를 선호하고, 대회는 3.5~3.6m로 만든다. 스피드는 조절이 가능하다. 전날에 롤링(롤러로 밀어주어 그린을 딱딱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보다 당일 새벽에 하는 게 스피드를 더 높인다. 골프장마다 잔디가 달라서 제일 먼저 잔디의 특성부터 파악해야 한다. 예컨대 해운대비치의 경우 값비싼 펜A원을 쓴다. 이건 잎이 가늘다. 펜 크로스보다 스피드를 더 낼 수 있다. 잔디의 특성에 따라 스피드도 달라진다. 오전 오후 차이가 난다.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바람이 그린을 마르게 한다. 오후에 가도 그린이 말라 느려지지 않는다. 지난 주 드비치는 바람이 불어서 그린이 더 빨랐다. 1라운드 후 물을 뿌렸고, 둘째날 두 배로 뿌려도 스피드는 4.0까지 갔다. 오후에 바닷바람이 불면서 딱딱해진 때문이었다. 한화금융클래식은 엄청난 러프와 좁은 페어웨이를 지켜내는 싸움으로 코스를 세팅한다. 어떤 폭은 20야드 정도밖에 안 된다. 페어웨이 잔디 높이는 0.9cm 미만이다. 하지만 세미러프는 3cm, 헤비러프는 5cm 이상, 메이저 대회 러프 길이는 8~10cm 이상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 코스 세팅에서 대회 첫 날과 마지막 날은 얼마나 차이가 나나? 마지막 날이 확실히 어렵나?
3일짜리 대회라면 쉬운 홀이 1점, 중간 난이도 홀이 2점, 가장 어려운 홀을 3점으로 정하고 믹스 매치한다. 따라서 한 라운드에 총점 36점이 나오면 중간 정도 난이도다. 대체적으로 마지막 날은 선수들도 코스가 익숙한 만큼 난이도를 2~3점 더 높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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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장에서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정 위원장.


- 코스 세팅도 하지만 선수들에게 룰 교육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되돌아보니 내가 올해 52시간을 경기위원이나 선수들에게 강의했다. 선수들이 가장 약한 부분은 볼 드롭과 구제 상황이다. 예컨대 드롭 구제를 받는 데 있어 볼이 놓인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한 클럽 내에 떨어진 자리에서 드롭을 하되, 그때 볼이 지면에 떨어져서 굴러도 두 클럽을 벗어나야지 재드롭이 가능하다. 그전에 볼을 줍거나 위치를 이동하면 벌타를 받는다. 작년에는 그걸로 벌타를 받은 케이스가 있었으나 올해는 다행히 없었다.

- 올해 가장 기억나는 선수의 룰 위반과 벌타 사례는 무엇이었나?
국가대표 시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김현수 선수가 KB국민은행 스타투어 챔피언십에서 오구 플레이 포함해 한 홀에서 5벌타를 받은 것, 이수그룹KPGA선수권에서 황지예가 오소 플레이를 해서 총 4벌타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벌타를 주고싶어 주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벌타 받은 선수 못지않게 나도 사실 마음이 아프다. 어떤 때는 그날 저녁을 못 먹을 때도 있다.

- 룰이나 경기의 응급 상황 등에서 KLPGA는 잘 교육하고 대응하고 있나?
물론이다. 안전을 위주로 교육한다. 자칫 타구 사고라도 나면 협회나 대회의 이미지에 찬물 끼얹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행히 올 시즌에 그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불시의 약물검사인 도핑에 걸린 선수도 없다. 외국에서는 종종 걸린다고 알고 있다.

- 선수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룰이나 에티켓과 관련된 기본 상식이라면?
카트길, 지주목에 대한 확실한 구제 상황 등이다. 하지만 미심쩍으면 경기위원을 불러서 확인받는 것이 좋다. 또한 다른 선수가 그린에서 퍼팅을 할 때면 그린 근처에서 지켜주는 게 예의다. 많이 고쳐졌으나 아직 그 부분은 부족하다. 대회 중에 선수가 그린을 벗어나면 갤러리도 따라서 움직이니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경기위원들이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살피는 건 어떤 것인가?
(매 선수들의 티오프 진행시간을 적은 표를 보여주며)대회마다 선수들이 플레이 진행이 얼마나 원활한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혹시나 슬로우플레이가 되지 않게 살피고, 어느 팀이 지체되면 왜 그런지 파악한다. 대회마다, 라운드마다 항상 전후반 코스에 서너 명의 위원들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즉시 도착해 문제를 해결해준다.

정창기 위원장은 올 겨울까지는 역시 집에 들를 시간도 없다고 했다. 인터뷰 중에도 수시로 무전기로 경기위원과 내용을 주고받으며 경기 진행을 확인했다. 이번 주 부산에서의 대회를 마치면 다음 주에는 용인에서 열리는 시즌 마지막 대회장으로 향해야 한단다. 그걸 마치면 Q스쿨을 감독하러 전북 무안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 뒤에는 다시 부산과 일본, 중국에서 대회가 있다. 아마 12월 중순이 지나야만 울산 집에 돌아가 오랫만의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운대비치(부산)=남화영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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