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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파멸의 시작 (38)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현금 200억, 주식으로 6800억 내놔요.”

유리의 성에서 한 바탕 난리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유민 회장과 신희영은 협상하는 자세로 식탁에 마주 앉았다. 이미 밤늦은 시각이었다. 언제나 수행하던 비서도 곁에 없었고, 늘 집안을 지키던 송 집사도 곁에 없었으므로 오랜만에 단 둘이 마주앉은 셈이었다.

“그럼 합이 7000 억 이로군.”

“그래도 이혼 당하는 것보다야 낫지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겠군.”

“말씀 똑바로 해요. 이혼 당하는 거예요. 이혼 당하면 당신 전 재산의 절반을 위자료로 내놓아야 할 걸?”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그건.”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법정에서 알려주겠지요. 알몸으로 쫓겨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냉정하게 계산해 보라고요.”

이혼 하지 않는 대신 7000 억 원에 해당하는 재산을 내놓으라는 신희영의 요구였다.

“7000억이 장난인 줄 알아? 7000억이면 잘 나가는 회사 하나 값이요.”

“잘 아시네요. 잘 나가는 회사 하나만 달라는 말이에요. 더도 덜도 말고 잘 나가는 회사 하나만!”

신희영은 목소리를 또박또박 끊어가며 다짐하듯 말했다. 하긴 그 말을 꺼내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신희영은 이미 유민 제련그룹의 회장 자리에 앉아 회사 조직도를 새로 작성해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대표이사에 신희영, 전략기획실장에 한승우, 그 옆으로 가지를 뻗은 스포츠마케팅 TF팀장에 강준호… 제 손으로 내각을 구성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결코 남과 타협하는 자리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었다.

“회사 경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작은 회사라도 하나쯤 경영해보겠다는 거 아니에요? 만약 당신이 졸지에 변이라도 당하면… 두 눈 빤히 뜨고 제련그룹을 남에게 털려야 해요?”

“변? 그것도 졸지에?”

유민 회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하지만 그건 신희영에게 묻는 말이 아니었다. 며칠 전, 공항에서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임의동행 형식으로 끌려가던 순간부터 머릿속을 맴돌고 있던 화두였다. 원래 변이란 졸지에 당하게 되는 법. 사람 팔자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진작부터 아들이나 아내, 딸에게 주식을 분산시켜 놓았어야 옳았을지도 모른다.

“좋아요. 7000 억 원을 준다고 칩시다. 법적인 양도절차라든지 세금문제 등등을 감안해서 1년 이내에 그 재산이 당신에게 간다고 치잔 말이야. 그러면 더 이상 이번 문제로 왈가왈부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수준 떨어지는 소리 그만 해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지킬 테니까.”

“좋소. 해 봅시다.”

유민 회장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엊그제 안가에 갇혀 있던 날, 군인인지 정보부 요원인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던 높은 양반과 약속한 3000 억 원과 합하면 향후 1년 이내에 끌어 모아야 할 돈이 자그마치 1 조원이었다. 그 많은 자금을 새로이 끌어 모을 능력은 없었다. 그러니 베어 낼 수밖에 없을 터. 1조 원에 해당하는 살점을 베어내려니 막상 어디를 베어내야 할 지 막연하기만 했다.

“배추김치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있던 사람답지 않군. 제법 멋져, 당신.”

주머니 돈이 쌈짓돈. 어차피 주식 분산을 시도해야 할 시점이었으므로 이런 비아냥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흔쾌히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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