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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현변호사의 TV꼬리잡기]뉴미디어 ‘한글’과 ‘SNS’
드라마에는 주인공이 있게 마련이죠. 왕 중의 왕, 주인공중의 주인공, ‘세종대왕’이 등장하는 SBS수목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요즈음 장안의 화제입니다.

칼럼을 쓰고 있는 이 글도 그분이 창제하신 ‘한글’인데요. 그 존재감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말은 있는데 글이 없는 세상을.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암흑의 세월을 백성들은 반만년을 견디어 왔고, 마침내 세종대왕의 고뇌와 번민으로 백성들의 문자 ‘한글’이 ‘발명’이 됩니다.

보통, 문자라는 것은 예전부터 존재해왔던 개념인데요. 어떤 나라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표현하기 위하여, 존재하지 않던 ‘문자’를 어느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특정한 누군가의 계획 하에 ‘만들어진’ 것은 아마 ‘한글’의 경우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보다 미스테리한 사건입니다.

어찌되었건 당시 ‘한글’은 뉴미디어였습니다. 쉽게 말해 새로운 표현방법, 소통방법이었던 것이죠. 한글 창제 무렵 조선시대의 사대부들. 즉 귀족들은 자신들만이 ‘한자’라는 소통수단을 독점하면서 참 쉽게 쉽게 정치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글’이라는 뉴미디어가 하늘에서 꽝하고 떨어졌으니 아마도 사대부들의 반대는 목숨을 걸 정도였을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리면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뉴미디어가 출현했습니다. 즉시적 의사표현이 스마트폰에 의하여 구현되면서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렸습니다. 기존 미디어 수요자의 지위에서 단박에 1인 언론의 공급자가 된 것입니다.

그 폭발적 파급력은 ‘한글’ 창제의 파급력에 견줄만 합니다. 한 사람이 한 대의 스마트폰에 각자의 신문사, 방송사를 소유하고 운영하면서 정치, 사회, 문화, 경제의 모든 분야에 자신의 의견을 내고, 다른 목소리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합니다. 동시에 이 목소리는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죠. 때로는 물건을 반값으로 살 수 있게 해주고, 때로는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독재정권을 끌어내리기도 합니다. 저 같은 힘없는 사람도 재벌회장님이나 이효리씨와 트윗을 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재앙도 따릅니다. 사생활이 침해되고 허위의 정보가 유통되며, 범죄에 악용되기도 합니다. ‘괴담’도 실어 나르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적절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헌법상의 권리인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역시 헌법에서 ‘제한’ 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그 제한은 ‘과잉’으로 할 수 없다는 규정도 역시 헌법에 있습니다.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SNS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려 하는데요. 사후적 처벌로서가 아닌 사전적 규제를 논의하고 있는 듯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사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반적인 방식은 아닙니다. ‘추상적인 위험성’을 모호한 판단기준으로 재단할 우려 때문에 법학자들은 이러한 사전적 규제는 최소화 되어야한다고 하죠. “표현의 자유”를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이유는 민주국가에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학식이 얄팍하다는 이유로,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하극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진다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백성들의 입을 막는다면, 과인은 대체 어디서 백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단 말이오?”라고 일갈하는 세종대왕 한석규의 대사를 곱씹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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