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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1층’의 재발견, 거래 활발
지난해 가을 결혼해 서울 은평구 응암 힐스테이트 아파트 1층에 신혼집을 차린 직장인 김모(35) 씨는 집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결혼 전 10층 이상 소위 ‘로열층’에서 살다 왔지만 불편함을 전혀 못 느낀다. 필로티(아파트 1층에 기둥을 세워 건물을 들어 올린 후 만들어지는 공간) 설계로 다른 아파트의 2층 높이여서 사생활 노출에 대한 걱정이 없고, 소음은 오히려 덜하다.

출퇴근 시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 편리하고, 엘리베이터 이용료를 내지 않아 관리비도 싸다. 김 씨는 “단지 내 조경이 잘돼 있어 창밖의 조망도 나쁘지 않다”며 “그동안 왜 로열층만 고집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침체된 주택시장에서 5층 이하(저층) 아파트의 인기가 상승세다. 주택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실속을 챙길 수 있는 저층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거래된 아파트의 39%가 저층이다. 10채가 거래됐다면 4채가 저층 아파트였던 셈이다. 수도권 거래량만 따지면 35%가 5층 이하다.


단지별로 저층 거래 비중이 더 높은 곳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난 1월 기준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9단지 아파트는 모두 4건 거래됐는데 이중 3건이 저층이고, 14단지 거래량 5건 중에서도 3건이 저층이다.

김은선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저층 아파트는 고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고 중소형 크기가 많아 거래가 더 활발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층에는 대형보다 중소형 비중이 높다. 건설사가 저층엔 실수요 차원의 소형 위주로, 고층일수록 조망권을 강조하면서 고급 대형 아파트 중심으로 배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층수별 거래된 아파트의 면적 비중을 보면 저층 거래량 가운데 89%가 전용면적 85㎡ 이하의 중소형이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최근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중소형 주택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저층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저층에 수요가 몰리면서 시세는 상승세다. 서울에서 저층 아파트의 평균 거래가격은 중ㆍ고층보다 오히려 높다. 지난해 1㎡당 거래가격 기준 서울의 5층 이하 아파트는 584만원인데 비해 6~10층은 549만원, 11~15층은 554만원을 각각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저층 아파트는 분양가격이 기준층보다 많게는 10% 정도 저렴하다. 하지만 입주 후 거래될 때는 시세가 기준층과 5% 이내로 좁혀져 시세 차익도 챙길 수 있다.

예컨대 삼성물산이 경기도 고양시 원당뉴타운에 공급하고 있는 ‘래미안 원당 휴레스트의 3.3㎡당 분양가는 저층이 830만원인데, 기준층은 870만~900만원 수준이다. 저층 분양가가 8% 정도 싼 것. GS건설이 대구 중구 대신동에 짓는 ‘대신센트럴자이’ 저층 84㎡형 분양가도 평균 분양가 대비 3000만원가량 저렴하다. 그런데 이들 아파트는 모두 뛰어난 조경 시설로 주목받는다. ‘래미안 원당 휴레스트’의 경우 조경 녹지율이 40%에 달한다. 저층 거주자일수록 단지 내 조성된 대왕 참나무길, 숲길, 물보라뜰, 벽천 등 다양한 테마별 공원시설 조망권을 누릴 수 있는 것.

이영진 이웰에셋 부사장은 “입지만 좋다면 저층이어도 단지 내 공원 조망권을 누릴 수 있는 등 실속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층의 이미지는 중장기적으로 많이 개선될 전망이다. 특히 기피대상으로까지 여겨졌던 1층의 위상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요즘 분양하는 아파트의 1층은 필로티로 높이는 것은 기본이고, 발코니 무료 확장이나 테라스 설치 등 추가 공간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준공할 경우 이런 추가 공간이 시세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1층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는 길을 열어주려 하는 움직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국토부는 최근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현재 근린생활시설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지하층을 1층 주민이 전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주택시장이 투자 수요가 아닌 실수요자 중심으로 움직이면 저층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실수요자가 선호하는 중소형이 많기 때문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본부장은 “저층 아파트는 자산 가치 상승을 목표로 단기 투자수익을 노리고 매입하는 대상은 아니다”면서도 “실거주 목적으로 분양가 할인 등 실속을 챙기는 차원에서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일반 아파트뿐 아니라 재건축 아파트도 중ㆍ고층보다 저층 단지가 투자 1순위다. 부동산 불황에도 불구하고 중ㆍ장기적 투자 차원에서 5층 이하 저층 아파트 매입을 주문하는 전문가들이 여전히 많다. 도심에 주택을 공급할 만한 땅이 부족한 상황이라 대지지분(아파트 전체 단지의 대지면적으로 가구 수로 나눠 등기부에 표시되는 면적)이 큰 아파트일수록 재건축 뒤 얻는 수익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강남 저밀도 재건축 아파트가 대표적.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입주한 강남권 주공아파트는 개포 5~7단지, 잠실 5단지, 둔촌 3~4단지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5층짜리 저층이다. 가구 수가 적은 반면 대지 지분이 커 아파트를 재건축할 때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면적이 클 수밖에 없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주택시장이 회복되고 규제완화 등으로 재건축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 강남권 저층 단지는 가장 큰 인기를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한 기자/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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