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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메밀
연일 폭염으로 잃은 입맛에 얼음국물이 사각거리는 메밀국수 한 사발은 정신을 퍼뜩 들게 한다. 성질이 찬 메밀은 한여름 냉차로 이용하면 입안이 개운하고 머리까지 맑아진다. 고소한 차향을 즐기며 동동 띄워 놓은 볶은 메밀을 입안에서 톡톡 터뜨리는 재미도 그만이다. 메밀은 다른 곡물이나 쌀에 비해 비타민 B군과 필수아미노산이 3배나 많을 정도로 영양가가 높다. 특히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비타민 P의 일종인 플라보노이드 유도체인 루틴 성분이 풍부해 아이들의 감기 예방에 좋다. 또 루틴은 혈당과 콜레스테롤 저하, 당뇨, 신장질환 개선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순환 및 대사 장애를 겪고 있는 현대인을 위해 예비된 맞춤 곡물처럼 보인다. 오래전 구황작물로 배고픔을 덜어준 메밀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척박한 데 아무렇게 뿌려도 잘 자라는 메밀은 중복 무렵 파종해 9월 중순이면 팝콘 같은 꽃을 터뜨린다. 메밀꽃은 수수하고 아련하지만 홀리는 데가 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븟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고 한 이효석의 절창 그대로다. 이즈음 봉평은 ‘메밀꽃 필 무렵’을 느끼려는 발길로 북적인다.

사실 봉평은 메밀꽃이 피지 않아도 메밀천지다. 메밀막국수집이 즐비하고 메밀과자, 메밀라면, 메밀전병 등 메밀이 들어간 먹거리가 넘쳐난다. 옛 봉평장터와 허생원과 함께 늙어간 당나귀, 물레방아도 곳곳에 서 있다. ‘이효석 문학관’이 생긴 뒤 나타난 현상이다. 어린 시절을 봉평에서 보낸 이효석은 작품의 진한 토속내와 달리 서구적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깔끔한 외모에 클래식 음악을 즐겼고 거실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해 놓는가 하면 온천과 카페 등을 다니며 이국적 정취를 즐긴 도시적 멋쟁이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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