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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 정장선> ‘높은 경쟁력’ 우리 국악의 좌표는
예술인들 대우하고 지원하는 日
전통 중시 초강대국 면모 엿보여
민족 정체성 보존 배울건 배워야


2개월 전 재일 무용가 김묘선 선생에게서 일본 국악공연 초청을 받았고 큰 생각 없이 가겠다고 했다. 14일 출발일이 다가오면서 걱정이 컸다. 한ㆍ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 공연이 제대로 될지, 사고는 없을지, 정부나 기업 지원 한푼 없이 한국에서 40여명이나 가는데 경비나 제대로 마련할지 말이다. 김묘선 선생은 관객이 꽉 찰 거라고 장담했지만 요즘 양국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였다. 16일 공연 한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엄청난 폭염에도 벌써 관객들이 줄을 서 있었고 공연시간이 되었을 때는 극장이 정말 꽉 찼다. 인구 25만의 소도시였고 오사카에서 3시간이나 걸리는 지방이었지만 관객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다. 800석 모두 유료 관객이었고 관람료도 우리 돈으로 4만~5만원 하는 고가였다.

국가중요문화재 27호 전승자이며 일본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애쓰는 김묘선의 승무와 삶의 애환을 풀어가는 살풀이춤에서는 일본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쳐다보았다. 내 마음속에서도 애절함이 마구 밀려왔다. 무속춤 대감놀이와 일본 악기 사무아치와 고토, 한국의 장고가 어우러진 박범훈 작곡의 메나리, 남녀의 사랑을 춤으로 묘사한 이지선과 박성호의 애련무에서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이성준의 태평소와 상모놀이, 사자춤이 어우러진 풍물패 광개토의 풍물놀이에서는 점잖은 일본인들도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내며 하나가 되어 갔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이지선의 발림무용단 17명이 좌우, 뒤에 매달린 세 개의 북을 치며 춤을 추는 삼고무에서는 완전히 압도되어 끝나고도 그 여운이 오래갔다.

일본의 한 저명인사는 올림픽 개막식을 보는 것 같다고 했고, 일본 지역 언론에서는 대서특필했으며 NHK에서는 공연 전체를 촬영해 갔다. 연출가 우재현은 두 나라 문화색을 하나의 무대에 조화롭게 올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지만 한국 전통문화를 유감없이 알린 무대였다.

최근 한류와는 별개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잘 모르는 일본인에게 아주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한국 문화의 뿌리가 깊고 뛰어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어느 정치인이 그리고 어느 관료들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가? 100여명의 정치인이 우리나라가 전통이 있는 나라라고 외쳐도 이들의 공연 한 번만 할까? 특히 한ㆍ일 관계가 아주 나쁜 이 시점에서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우리 전통문화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이들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온갖 멸시와 악조건 속에서 우리의 전통을 이어온 국악인들, 예전에는 결혼조차 힘들었다는 이들이 세계인들에게 감명을 주고 한국이 과거에도 문명국이었음을 알리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인기 있는 운동이나 서양 음악에는 정부와 기업들이 서로 지원하려고 하는데 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아마 이번에도 많은 적자를 보았을 것이다.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전통예술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세 배나 많다. 그래도 다 잘산다. 이유는 국민이 전통을 사랑하고 그들의 음악을 잘 들어주고 또 대우해주기 때문이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배울 건 배워야 한다. 일본은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초강대국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야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멀었다.

정부나 기업은 우리 국악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을 보여야 한다. 한국의 뿌리이고 정체성이며 또 외국인들이 열광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관심이다. 생활 속에서 국악과 같은 전통예술을 즐기고 배우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분야 예술인들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5000년 역사를 살리는 길이며 미래로 나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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