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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황해창> 현대 · 기아車, 졸면 죽는다
 현대ㆍ기아차 노사 양쪽에 묻는다. 소비자 무서운 줄 알기나 하냐고. 순진했던 그들은 똑소리 나게 차량 재원을 꿰뚫고 인터넷을 뒤지고 발품까지 팔아가며 애국심을 저울질한다. 차 한 대 원가구조도, 또 이걸 약점 삼는 노조 사정도 알 만큼 안다.


지방에 사는 순박한 친구 C가 느닷없이 도요타 캠리 자랑을 늘어놓는다. 하필이면 일본차냐 했더니 연비대비 가격대비 어쩌고저쩌고 일장 연설이다. 차 빠꼼이가 따로 없다.

나 역시 새 차를 물색 중이다. 지금 차는 15년 묵은 기아 카렌스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사회 새내기 아들에게 물려 준 지 2년째. 잦은 고장에도 묵묵히 끄는 녀석도 또 차도 대견할 따름이다. 

나는 자칭 BMW다. 버스(Bus)나 지하철(Metro), 그리고 가급적 걷기(Walking)를 즐긴다. 아내도 다행히 이 점만큼은 똑 닮았다.

그런데 최근에 사정이 달라졌다. 장마와 폭염에 지친데다 이제는 그럴듯한 차 한 대 장만하라는 주변의 권유로 퇴근길 버스 안에서 안구 돌리기 바쁘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갈수록 외제차에 필이 더 꽂힌다. 자동차로 애국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친구의 말도 귓전에 맴돌고.

지금의 차는 이른바 IMF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2년째이던 1999년에 샀다. 엄습해 오는 위기감에 기름 값이라도 아끼자며 현대 쏘나타를 내다팔고 LPG차량을 선택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부도로 법정관리를 받다 현대차에 인수ㆍ합병돼 회생의 몸부림을 치던 기아차가 안쓰러워 그래 이거다 했던 것도 사실이다. 특별한 애국심, 금모으기의 연장일 수도 있고.

그러고 보니 현대ㆍ기아차에 말할 것이 많다. 당시 임기 초인 김대중 대통령은 기아차 회생에 각별한 공을 들였고, 2000년 몇 월인가 나는 청와대 출입기자로 기아차 회생을 확인하러 광명공장을 찾은 김 대통령을 수행 취재할 기회를 가졌다. 공장 정문 앞 수백 미터까지 도열한 임직원들의 환호, 정몽구 회장의 극진한 안내, 그 회사 작업복까지 입은 채 1년 만에 이룬 기적의 현장을 꼼꼼히 살피던 김 대통령, 그날 기억이 새롭다.

또 하나. 늦여름 장대비가 쏟아진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새 차 천장 선루프에서 운전석으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찔하고 황당했어도 피 말리는 구조조정의 후유증이 이런 것이구나 하며 참을 대로 참아냈다.

섭섭함도 적지 않다. 기사회생 10년 때, 헌신적이던 소비자 한 사람으로서 작지만 의미 있는 특별할인 이벤트나 하다못해 짧은 감사 코멘트를 기대했지만 속절없었다. 그랬더라면 난 새 차를 샀다. 

그런 현대ㆍ기아차가 허구헌 날 노사분규다. 부분파업과 주말특근 거부로 2만여대나 날려버렸다. 피해액이 5000억원에 이른다. 지금 독일 일본 경쟁회사 노조는 일감을 더 달라 아우성이다. 미국에선 정 회장한테 공장 증설을 애원하고 있다. 밖에서 벌어 국내 노조 배만 불린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귀족노조다 아니다 노사 간 다툼도 볼썽사납다.

현대ㆍ기아차 노사 양쪽에 묻는다. 소비자 무서운 줄 알기나 하냐고. 순진했던 그들은 똑소리 나게 차량 재원을 꿰뚫고 인터넷을 뒤지고 발품을 팔아가며 애국심을 저울질한다. 차 한 대 원가구조도, 또 이걸 약점 삼는 노조 사정도 알 만큼 안다. 사륜구동 장치여서 웬만해도 굴러간다고? 천만의 말씀. 졸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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