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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관대한, 너무나 관대한’
“세상 어느 나라가 제 목에 비수를 겨누는 집단에 이토록 관대하단 말인가. 법과 원칙을 어겨도 무력하리만치 관대한 게 우리 사회다. 그러나 정작 관대해야 할 다문화와 도전실패 껴안기에는 왜 이리 인색한지….”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관대해졌는지 모르겠다. ‘이석기 사태’를 보면서 드는 느낌이 그렇다. 대놓고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심지어 ‘적(敵)’으로 여기는 ‘이석기류(類)’의 인사들이 금배지까지 달고 활보하는데 어찌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이들의 근거지 정당에 국민 혈세로 매년 수십억원의 보조금까지 쥐어주고 있다. 세상에 어느 나라가 제 목에 비수를 겨누는 집단에 이토록 관대하단 말인가.

자신은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라지만 우리는 그가 뼛속까지 종북주의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공공연히 북한 지도자와 체제를 옹호하고, 그들이 쓰는 말투까지 닮기를 애쓰는 부류들이 아닌가. 그러나 이를 뻔히 알면서도 노무현정부는 두 차례 특별사면과 복권을 통해 피선거권을 회복시켜 주었다. 왜 그토록 아낌없는 온정을 베풀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감방을 나오며 그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감사는커녕 허술한 법망과 어설픈 관용을 마음껏 비웃었을 것이다.

하긴 법과 원칙을 어겨도 무력하리만치 온정적이고 관대한 게 우리 사회다. 고질적 사회병폐들이 여간해서 근절되지 않는 것은 관대한 사회분위기 탓이 크다. 박근혜정부가 ‘4대 사회악(惡)’으로 간주한 학교폭력, 성폭력, 가정파괴, 불량ㆍ부정식품 사범이 모두 그렇다. 학교폭력만 하더라도 후속 조치가 너무 관대하다. 피해학생은 극단적 상황에 몰리는데 ‘가해학생의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며 기껏 취하는 조치가 전학이다. 이건 관대한 게 아니라 책임회피다. 아무리 어린 학생들이라지만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고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시켜 줘야 한다. 그게 훨씬 교육적이다. 불량식품 제조와 유통은 불특정 다수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쁜 범죄다. 그런데도 관련 사범 처벌은 늘 솜방망이다. 대부분 벌금이나 가벼운 행정처분에 그치고 실형 선고는 1%도 되지 않는다.

터무니없이 관대하기는 공권력도 마찬가지다. 당장 시위 현장을 보라. 스피커 소음이 기준치를 훨씬 넘어도 이를 처벌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아무데나 농성 천막을 설치해도 속수무책이다. 법과 원칙을 벗어나도 공권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니 국가의 기강과 질서가 흔들리고 ‘이석기류’들이 판을 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관대해야 할 대목에선 정반대다. 옹졸하고 편협하며 배타적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145만명을 넘고, 국제결혼 자녀 수는 19만명이다. 5만여명의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초ㆍ중ㆍ고교에 다닌다.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지만 우리들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또 하나 부족한 것은 실패에 대한 관대함이다. 우리 사회에서 실패는 곧 죽음이다. 창업에 단 한 번만 실패해도 돈도, 열정도, 가정도 모두 끝이다. 이런 토양에선 제2의 저크버그도, 스티브 잡스도 결코 나올 수 없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열정과 패기를 받아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관대함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이석기 사태’가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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