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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 2013년, 우리들의 귀향(歸鄕)
“정치란 식량을 풍족히 하고, 군대를 충분히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진짜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다. 곳간에서 인심도 나지만 민심의 근원지도 먹고사는 문제다. 특히 명절 즈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20년 전인 1994년 추석을 앞둔 대한민국의 풍경은 말 그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아라’란 말이 딱 어울렸다. 백화점도 재래시장도 선물과 제수용품을 사려는 소비자들로 성시를 이뤘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에는 지방상인들이 타고 온 관광버스가 빼곡해 주차전쟁이 벌어졌다. 백화점, 재래시장 모두 전년보다 50%가량 매출이 늘었다. ‘추석특수’에 모두 명절분위기였다.

그해 상반기 성장률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수가 있나 싶은 8.5%였다.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서 한국경제도 호황열차에 올라탔다. 경제의 바로미터인 종합주가지수도 추석을 앞두고 5년 만에 1000포인트 고지에 올라섰다. ‘아무 주식이나 사도 오른다’란 얘기가 빈말이 아니었다. 늘 그렇듯 전문가들은 1000포인트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다웠던 20년래 가장 좋았던 추석 전 풍경이었다. 물론 3년 뒤 닥칠 외환위기의 씨앗이 이미 뿌려지고 있었지만….

올 추석은 오랜만에 긴 연휴, 또 다른 여름휴가를 받은 느낌이다. 경기가 안 좋다는 얘기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어 새삼스럽지 않다. 이웃나라의 ‘잃어버린 20년’ 경고가 낯설지 않을 정도로 불경기는 상시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세계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한국은 선방하고 있다지만,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느끼는 살림살이는 여전히 신통치 않다. 경기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만의 리그’인 듯 보인다. 한 대선후보가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가 화제가 된 게 2002년인데, 1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경기가 별로라는 것은 알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양극화의 해법은 나오지 않고,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배고픈 것’보다 견디기 어려운 ‘배 아픈’상황인지도 모른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추석 때 가장 받기 싫은 선물이 생활용품세트다. 한 대형마트 조사를 보면 올 추석 선물세트 매출 중 생활용품이나 식용유세트처럼 3만원짜리 미만이 88%나 됐다. 작년보다는 4%포인트나 늘었다. 받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주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특별하지 않으면 몇 만원짜리 생활용품으로 추석 인사를 대신하는 것이다. 헤럴드경제 기자가 둘러본 백화점에는 중형차 한 대 값이 넘는 위스키에, 48만원짜리 수박이 선물로 진열돼 있지만, 보통사람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이래 저래 추석을 앞두고 심란한 서민들에게 정치판은 명절 분위기를 망치고도 남을 정도다.

“정치란 식량을 풍족히 하고, 군대를 충분히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 진짜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다. 곳간에서 인심도 나지만 민심의 근원지도 먹고사는 문제다. 풍족하면 어지간한 문제들은 가려지게 마련이다. 특히 명절 즈음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찌됐든 추석이다. 손에 쥔 선물이 비록 몇 만원짜리일지라도 우리들의 귀향은 행복해야 한다. 힐링이 강박처럼 다가오는 세상이어서 더욱 그리운 게 고향이기 때문이다.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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