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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자숙하는 총수에겐 합리적 수준의 선처를
SK그룹 최태원 회장, 최재원 부회장 형제가 2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제민주화 요구로 재벌 총수에 대한 양형이 강화된 이래 실형이 확정된 사실상 첫 사례다. 아무리 대그룹 오너라 해도, 우리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해도 형사 책임을 경감케 하는 주요 사유가 되진 않는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최 회장으로선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공은 공이고 형사적 책임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경제에 기여한 공은, 적어도 이제 사법부 앞에서는 먹히지 않게 된 셈이다.

최 회장 형제가 이전의 다른 그룹 회장들처럼 집행유예를 얻어내지 못했던 이유는 한 가지다. ‘사익(私益)’이라는 잣대가 적용된 때문이다. 최 회장은 상속지분을 포기했던 동생에게 옵션 투자로 돈을 벌어 나눠주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선의를 십분 인정하더라도, 그룹 계열사 자금을 동원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계열사 지원 등을 위해 그렇게 했다면 판결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석래 효성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 다른 총수 재판에서도 이 원칙이 널리 준용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유난히 총수와 관련한 재판과 소송이 많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기업경영은 초비상이라는 얘기다. 오너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 우리 경영구조에서 오너 없이 제대로 경영이 이뤄지기 어렵다. 투자는 미뤄지고 미래사업 추진도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 총수 부재는 곧 경영공백 그 자체다. 그러기에 오너 부재에 따른 리스크 관리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총수 1인에 좌우되기보다는 ‘시스템’의 힘으로 움직이는 경영 구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오너가 없다고 경영을 못 하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

대기업을 잡으려면 검찰이 경영자료 몇 장만 뒤져도 충분하다는 말이 있다. 법의 잣대로는 허용되지 않는 잘못된 관행들이 무수히 많아 언제든 기업을 옭아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너와 대기업이 할 일은 분명하다. 과거와 단절하는 것이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를 없애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투명경영, 책임경영을 펼쳐야 한다. 잘못된 관행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법부에 대해선 판결의 일관성을 주문하고자 한다. 대기업이라고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 자숙과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총수에게는 합리적 수준의 선처도 필요하다. 열심히 뛰는 기업인에게는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번 판결을 총수, 기업, 법원 모두가 무겁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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