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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고는 갑·툭·튀 아닌 기다림의 미학”
광고인의 유레카
김경회 HS애드 CD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3년 전 우연히 발견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입니다. 이렇게 쉬운 언어로 이토록 감동을 줄 수 있음에 감탄하며, 이후로도 몇 번이고 이 시를 꺼내보고는 했습니다.

자세히 읽어 보아도 예쁜 시이고, 오래 읽어 보아도 사랑스러운 시입니다. 하지만 광고는 이 같은 기다림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습니다.

제한시간 15초, 이 야박한 시간 속에 광고주와 크리에이터의 욕심을 완벽하게 담아내야만 합니다.

이곳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광고 아이디어를 ‘갑툭튀’정도로 여기곤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툭하고 튀어오르는’ 생각말입니다. 물론 몇몇 광고 천재에게 아이디어 하나쯤은 우뇌만 슬쩍 거들어도 뚝딱 쏟아낼 수 있는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부분 광고인들에게 아이디어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나는 온몸이 촉수인 동물이 되고 싶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수 많은 낮과 밤을 각을 잡고 지새워야 겨우 건질 수 있는 ‘귀하디 귀한 것’입니다.

태아와 산모는 10개월짜리 원거리 연애를 합니다. 기약이 있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고인은 언제 만날지 모르는 아이디어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년 정도 팽팽한 샅바싸움을 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나 가족들로부터 “네가 혹은 당신이 대한민국 광고를 다하는 것이냐”는 비아냥도 듣게 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제 밥벌이의 즐거움인 것을요.

윤태호 작가의 ‘미생’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싸움은 기다리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광고 아이디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다림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의 아이디어가 의미 있는 생명체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또 기다리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은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고인에게 필요한 것은 타고난 디자인 감각, 출중한 문장력, 남다른 생각의 깊이 등이 아니라 강인한 체력과 지구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유레카를 욕조 속에서 외쳤습니다. 또 누군가는 사과나무 밑에서 외쳤습니다. 저마다 유레카의 장소는 다르지만, 기다림이 아이디어의 일부라는 것은 이제 자명한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좋은 취향이 꾸준히 쌓이면 안목이 되듯, 기다림속에 생각을 쌓으면 ‘좋은 발견’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김경회 CD는 뉴욕페스티벌, 런던국제광고제, 올해의 광고상 등 국내외 다수의 광고제 수상경력이 있으며 LG전자와 LG생활건강의 광고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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