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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기자의 일본열전] 일본인은 ‘가식적이다’?…일본인의 이중성,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 1. 일본에서 유학생활 중 겪은 일입니다. 기숙사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 도중, 이유를 모를 서러움에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스트레스성 두드러기가 발생해 마음고생이 심한 때이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은 일제히 “괜찮아?”며 위로 한마디를 건네고는 TV를 시청했습니다. 깔깔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어정쩡한 위로에 당황한 기자는 울음을 멈추고는 조용히 밥을 마저 먹었습니다.

# 2. 일본인 친구 A양과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남자친구 흉을 보는 A양에게“이래놓고서는 내일 ‘나 애 없이는 못살아~’하는 거 아냐?”고 장난스럽게 말했습니다. A와 헤어진 뒤 기숙사로 향하던 중,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아직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닌데 말을 할 때는 예의를 갖춰야 하는 것 아닐까.”

당시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던 기자는 혼란을 느꼈습니다.

# 3. 2010년,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한국인들과 하숙생활을 하던 때였습니다. 늦은 밤 월드컵 경기를 보며 저희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딱 한 번 실수한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우체통에 편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밤에 예의를 지킬 줄 아는 나라입니다.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르라’는 표현이 있듯, 선진국의 예의를 따라주기를 바랍니다.”

우표가 없는 것을 보니 이웃이 쓴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직접 와서 훈계를 하지’는 생각과 함께 서운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뒤 이웃과 인사를 나눌 때마다 ‘이분일까, 저분일까’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는 ‘일본인들은 가식적이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위 사례를 보고 “거봐, 가식적인 거 맞잖아”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라는 말이 있지요. 혼네는 본심, 다테마에는 겉으로 드러내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어느 나라든 본심과 다르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죠. 매일 괴롭혀대는 사수한테 “선배가 싫습니다”고 말하지 못하고 “저는 선배를 존경합니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느 사회든 혼네와 다테마에의 간극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이 ‘혼네’와 ‘다테마에’가 다른 대표적인 나라로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인은 직설적으로 거절하는 것을 실례(일본어로 시쯔레<失礼>)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지요. 그래서 상대방과 ‘친하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상대방을 자세히 모르는 만큼 자신의 감정을 편하게 드러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숙사 친구들에게 “내가 아픈데도 위로 한마디만 건네고 TV를 보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말하자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그들은 “혼자 시간이 필요할까봐 가만히 있었던 건데…….”라며 “아플 때 아는 척하는것도 실례잖아”고 말했습니다.

A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이야기를 꺼내자 A양은 “이제는 이해한다”며 “1년 이상 친하게 지내도 모르는 것이 사람이잖아. 그런 상황에서 너가 갑작스럽게 장난을 쳐서 당황스러웠어”라고 설명했습니다. 왜 직접 말하지 못했냐는 질문에는 “얼굴에 대놓고 말하는 건 실례 아니야?”고 반문하더군요. 상대방에게 직접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실례’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쓴 이웃도 마찰이나 갈등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일 아침 ‘오하이요-(일본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말)’하고 인사를 건네다 다투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사이가 될 수 있으니까요.

A양과 속마음을 터놓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A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너를 봤을 땐 많이 불편했다. 사귄 지 얼마 안된 사이에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 너의 고민, 슬픔, 기쁨을 내가 같이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을 나는 항상 느꼈다. 하지만 한결같이 나를 대해주는 너를 보고 ‘신유(親友ㆍ의지할 수 있는 벗)’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혼네와 다테마에가 같다는 것은 감정에 대한 ‘책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인끼리조차 회사생활의 고단함을 공유하지 않는 곳이 일본이라고 합니다. 또다른 일본인 친구인 B양은 “자기 회사 불만을 나한테 얘기하는 건 실례 아냐? 왜 그런 부정적인 마음을 나도 공유해야 하는 거지? 정말 미성숙한 것 같아!”며 한국인 남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일본에서 혼네와 다테마에는 결국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실례’에서 비롯된 사회용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지요. 하지만 일본의 이런 사회문화를 고려하면 일본인을 무조건 ‘가식적’이라고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아, 모든 일본인들이 혼네와 다테마에의 괴리가 큰 것도 아닙니다. 대학 동기 강모(28) 씨는 자신의 일본인 친구들은 너무 ‘쿨’해서 놀랐다고 합니다. 잦은 술모임에 바베큐 파티까지 왁자지껄하게 논 기억밖에 없다고 하네요. 결국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요. 기자의 경험이 흔한 경험인 것도 아닙니다. 일본에서 10년동안 생활한 박모(29) 씨는 기자의 경험담을 듣고 “맞는 말이긴하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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