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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어느 누구의 이야기 아닌 나의 이야기…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작 김광탁, 연출 이종한)’는 밋밋할 정도로 잔잔하다. 간암 말기로 죽음을 문턱에 둔 아버지와 그러한 아버지를 떠내 보내는 가족의 이야기인데, 드라마틱한 전개도 없고, 배우들의 연기도 호들갑스럽지 않다. 물론 피를 토하며 임종을 맞는 아버지의 모습도 그려지지 않는다. 되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 홀가분해진 가족들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공연 내내 객석 여기저기에서 눈물 콧물 훔치는 소리가 들려 온다. 대단히 별다를 것 없는, 동시대 우리들의 삶을 그린 이 리얼리즘 연극이 어느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 중 누군가가 투병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는 관객들에게는 깊은 공감대가 형성된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 신구와 어머니 손숙. [사진제공=신시컴퍼니]

아버지는 이북실향민이다. 40년 넘게 고단한 노동을 하며 두 아들을 키웠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간성혼수’에 시달리다 서서히 죽어간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끝까지 요양원에 내다 버리지 않고 돌본다. 젊은 시절 “무시하기로 1등, 구박하기로 1등”이었던 남편은, 꿈 속에서마저 “이쁜 감은 애먼년 주고 못난 감은 나에게 주는” 매정하고 무정한 남편이었다. “똥질만 안 했으면 좋겠다”며 넋두리를 쏟아 내면서도 요강을 씻어내고 기저귀를 갈아 준다.

무명 연극쟁이가 된 둘째 아들 동하. 좋은 대학 나와 미국에서 좋은 회사 다니며 떵떵거리고 사는 큰 아들에 비해 인생이 초라하다. “오로지 큰 형만 위했던”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하루하루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린 마음으로 바라보며 임종을 지킨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전, 동하가 아버지를 등에 업고 마당을 거닌다. 풀벌레 소리 가득한 달밤 시골집 마당에서 대답없는 아버지를 향해 “언제 한번 아버지와 살을 맞대고 홍매가 어떻고 달밤이 어떻고 고향이 어떤지 얘기해 본 적 있나” 두런두런 혼잣말을 내뱉는다. “가시기 전 제게 이런 추억 하나 만들어 주시는가”라며 내내 살갑지 못했던 부정(父情)과 화해한다. 

죽은 남편의 혼령이 찾아오는 장면. [사진제공=신시컴퍼니]

가장 가깝고 익숙하기에 소중함을 잊기 쉬운 것이 가족이다. 영원히 곁에 있을 줄로만 알고 “나중에 잘 해야지” 생각하기 쉬운,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 연극은 “지금 사랑한다 말하고 추억을 쌓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팔도의 사투리에 이북 억양까지 얹은 아버지 역의 신구는, 하얀색 중절모에 백구두를 신고 정정한 모습으로 혼령이 돼 아내를 찾아오는 장면이 없었더라면, 정말 어딘가 아픈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대체 불가한 명품 연기를 선사한다. 자분자분한 말투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아픈 남편을 돌보는 아내, 손숙의 독백은 객석의 모든 어머니들, 딸들을 울리고야 만다.

신구, 손숙, 정승길, 서은경, 최명경 출연. 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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