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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봇같은 현대인…“왜 사랑을…” 통렬한 질문
박천휴 작가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스마트폰에 빠진 현대인 로봇비유 영감
女로봇부품 구하러 떠난 男로봇 이야기
사람같은 로봇으로 아날로그 감성 자극
美작곡가 윌과 작업 올 미국 초연 추진


한 해에도 수십 편씩 쏟아져 나오는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소재 측면에서도 대부분의 장벽이 허물어졌는데, SF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보던 ‘로봇’을 주인공으로 세울 정도다.

지난달 초연의 막을 올린 이후 관객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인간을 돕다 쓸모를 다해 버려진 ‘헬퍼봇’의 이야기를 다룬다.

대본과 가사를 쓴 박천휴 작가(34)는 지난 2012년 창작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 관객들에게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듬해 라이선스 뮤지컬 ‘카르멘’의 번역과 작사를 맡으면서 공연과 인연을 이어왔고, 2014년 우란문화재단 프로그램을 통해 ‘어쩌면 해피엔딩’을 개발해 리딩과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쳐 2년 만에 정식 무대를 올렸다.



미국 뉴욕대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그의 본업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지만, 같은 학교에서 윌 애런슨 작곡가를 만나면서 2012년부터 함께 공연 일을 하고 있다. 뉴욕에 살면서 평일에는 바쁘게 회사에 다니고,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쪼개가며 1년 만에 이번 대본을 완성했다. 그는 “부엌에 앉아 글을 쓰기도 하고 동네 카페에 가서 문이 닫힐 때까지 있기도 했다”며 “다들 그렇듯 자신과의 싸움을 거치며 작업했다”고 말했다.

21세기 후반,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우연히 카페에서 들은 영국 밴드 블러의 보컬 데이먼 알반의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집으로 향하는 현대인들을 로봇에 비유한 가사에서 영감을 얻었고, ‘사람과 똑같은 로봇을 주인공으로 공연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처음에는 감정이 풍부한 남자 로봇이 사랑하는 여자 로봇이 고장나버리자 단종된 부품을 구하기 위해 로드 트립을 떠난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모험인가, 사랑인가’를 고민했고, ‘사랑에 빠지면 욕심도 생기고 슬픔도 생기는데 인간은 왜 사랑을 할까’를 로봇을 통해 보여주자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로봇을 주요 소재로 택하면서 관련 분야에 대한 탐색은 필수적이었다.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 폴 에크만 교수가 인간의 감정을 6가지로 분류한 연구를 보며, 로봇에게 수백 개의 감정이 프로그래밍 돼있는데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훨씬 더 많은 감정이 불어난다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후 SF 영화의 고전이라 불리는 ‘블레이드 러너’부터 최근작인 ‘그녀’까지 찾아보면서 ‘과연 로봇이 이런 게 혹은 저런 게 가능할까?’라고 한계를 두는 것 자체가 촌스러운 사고일 수 있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로봇은 이러면 안 돼’라는 생각을 조금씩 제거하고, ‘정말 사람 같은 로봇’을 캐릭터로 세워 이야기를 만들었다.

기술자들은 로봇을 인간에 가깝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반대로 인간은 점점 기계에 의존하면서 로봇처럼 변모하고 있다.

박 작가는 “인간처럼 감정이 복잡하지 않은 로봇을 통해 도리어 인간들이 놓치고 있는, 힘들거나 두려워서 감추고 있는 감정들을 담고 싶었다”면서 “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바는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을 소재로 하지만, 극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한없이 아날로그적이다. 헬퍼봇들이 사는 낡은 아파트 안에는 턴테이블과 재즈 잡지, 화분, 빈 병 등 오래된 물건이 자리하고 1970년대 유행했던 재즈 음악들이 귀를 울린다. 박 작가는 “미래가 배경이라고 해서 최신의 기계나 일렉트로닉 스타일의 음악을 쓰는 등 예측 가능한 연출은 피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인 작곡가 윌과 함께 작업한 만큼, 작품은 올해 미국에서의 초연도 함께 추진 중이다. 뉴욕에서 영어 버전 리딩과 워크샵 공연을 마쳤고, 현지 프로듀서와 계약까지 끝낸 상태다. “미국인 반, 한국인 반 창작팀이 만든 뮤지컬을 한국 관객께 소개해드렸으니, 이제 미국 관객들께도 저희 정서를 잘 전달해드리고 싶어요.” 오는 3월 5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관람료 4~6만원.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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