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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종 행렬에 신식군악대가? 웰본家 한국자료 대거 기증…1946년엔 기자 폭행 항의소동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추수된 쌀은 미곡집하장으로 보내세요. 암시장과 밀수업자들을 척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에서 공정한 쌀 수집과 배급을 집행할 수 있습니다.”(1946년 10월 24일 미군청정 공보자료 ‘한국인을 위한 한국쌀’ 중에서)

“경상남도 공보과장 홍을수가 극장 사건과 관련해 부산일보 이준상 기자에게 폭언을 퍼붓고, 폭행을 가했던 점에 대해 우리 경남도 기자단은 도 군정당국에 엄중히 항의하는 바이다.”(국문과 영문 작성, 1946년 12월2일 경상남도 출입기자단의 항의문)

[고종 어가행렬 맨 앞에 신식군악대가 행진해 이채롭다]

미 군정 당시 사회상의 일단(一端), 구한말 어가행렬과 소실된 문화재이 본 모습을 알게 해주는 문서 및 사진 사료(史料)들이 군정청 미국인 근무자의 딸에 의해 대거 한국에 기증됐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미국에 거주하는 프리실라 웰본 에비(Priscilla Welbon Ewy, 1937~)로부터 구한말 희귀사진과 1946~1947년에 미군정청 통역관으로 재직했던 기증자의 아버지와 관련된 자료 총 648점을 기증받고 기증자료집을 발간했다고 31일 밝혔다.

[숙종이 탄생했던 경희궁 회상전의 구한말 모습]

기증자는 대한제국 말기 활동했던 선교사 아서 G. 웰본(Arthur G. Welbon, 1866-1928)의 손녀이자, 해방 후 미군정청에 재직했던 헨리 G. 웰본(Henry G. Welbon, 1904~1999)의 딸이다.

‘한국인을 위한 한국쌀’은 경남도에 근무하던 헨리 팀에서 작성한 공보자료이고, 항의문은 헨리가 기자 폭행 사건 직후 출입기자단의 항의를 메모한 것이다.

[쌀 암시장을 경계하는 미군정 공보]

기증 물품 중에는 1939년에 작성된 ‘한국어의 로마자표기법에 관한 논문’도 있다.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장이었던 미국인 선교사 맥큔(G.M. McCune)과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양사를 전공한 라이샤워(E.O. Reischauer)가 만든 맥큔-라이샤워 체계는 최초의 한글 로마자 표기법이다. 초판 간행 이후 1948년과 1959년, 1984년에 개정을 거쳤다. 헨리가 소장했던 이 책은 1939년 초판본이며, 헨리가 한글 로마자 표기 학습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소장한 것으로 보인다.

경희궁 회상전 사진은 회상전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이 매우 높은 사진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시대 회상전은 왕과 왕비의 침전 영역이었으며 1661년 숙종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서궐영건도감의궤(西闕營建都監儀軌)’에 따르면 정면 7칸, 측면 3칸의 장방형 평면으로 월대 위에 위치한다고 되어 있다. 팔작지붕이며 건물 사방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건물 좌측면이 행각과 연결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중학교 부설 임시소학교 교원양성소 기숙사로 사용되었다.

경운궁 대안문(大安門)을 통과하는 어가행렬 사진은 고종일행으로 추정된다. 대안문은 황제국을 선포했던 대한제국의 정궁(正宮)인 경운궁(慶運宮)의 정문 역할을 했다. 이 사진에서 서양식 군악대가 악기를 들고 연주하며 행진하는 모습, 원수부 건물 벽 앞에 임시건물을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풍경이 이채롭다. 

[1946년 기자폭행사건에 항의하는 출입기자단 영문 항의문]

■웰본 가족이 맺은 한국과의 인연

기증자의 할아버지인 아서 G. 웰본은 1866년 미국 미시간에서 출생해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00년 내한했으며 북장로회 선교사로 활동했다.

할머니인 새디 웰본(Sadie Welbon)은 1899년 내한하여 대구에서 간호선교사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1901년 9월 24일 서울에서 결혼했으며 1919년 부인 새디의 건강이 악화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지속했다.

1919년 새디의 건강 악화로 웰본 가족은 본국으로 귀국했지만 아서는 1922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안동 지역에서 선교 사업을 펼쳤고 1928년 61세로 별세, 서울 양화진 묘역에 안장됐다.

웰본 부부의 차남인 헨리(Henry G. Welbon)는 기증자 프리실라 웰본 에비의 아버지로, 1904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아서의 부임지인 평양 외국인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받았고 1919년 미국 귀국 후 고등교육을 받은 뒤 목사가 되었다. 1932년 도로시 클라인(Dorothy Klein)과 결혼하여 두 딸, 벳시(Betsy Welbon)와 프리실라(Priscilla Welbon Ewy)를 두었다.

헨리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연으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한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휩쓸리자 지속적으로 한국 근무를 지원하여 1946년 1월부터 1947년 1월까지 주한미군정청 산하 공보부 문관으로 근무한다.

프리실라는 기증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근무 경력으로 한국과 3대에 걸친 인연을 이어간 것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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