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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 화려한 이력서, 변함없이 소신 지킨 정치인 김종인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독립운동가의 손자’, ‘경제민주화’, ‘5선 비례대표 국회의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관통하는 세 가지 단어다.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지난 1940년 7월 11일 당시 조선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현재의 신림동)에서 태어난 김 전 대표는 4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인 가인(街人) 김병로의 손에서 자랐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가인 김병로는 변호사 시절 독립운동 사건의 변론을 도맡은 인물이다. 가인은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던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이의있으면 항소하시오’라고 할 정도로 뚝심있는 삶을 살았다.

가인의 손자로 자라온 김 전 대표의 정치 인생도 할아버지의 삶과 같았다. ‘경제 민주화’란 큰 기틀에서 좌우를 넘나들며 정치철학을 설파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민주정의당(11대ㆍ12대), 민주자유당(14대), 새천년민주당(17대), 더불어민주당(20대)을 옮겨다니며 비례의원으로만 5선을 했다. 좌와 우, 산업 세력과 운동 세력 같은 구분은 그에게 무의미했다. 본인의 소신대로 정치 인생을 꾸려나갔다.

김 전 대표는 진보적 성향이 강한 경제 민주화를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설계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경제 정책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자 대립각을 세웠다. 결국 ‘박근혜의 정도전’이라고 까지 평가받던 김 전 비대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으로 옮겨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게 필요했기 때문”이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나를 원하는 곳이 있으며”, 또 “정치 균형을 잡아야 할 때”라면 그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뛰었고 승리를 만들었다.

자신의 정치 일생을 크게 3부작으로 나눈 김 전 대표는 요즘 알아보는 사람이 부쩍 늘어서 고민이다. “지난 1년 선거운동 하고 매일 TV에 나오고 하니까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진거야. 행동도 조심스러워지고 불편하더라고. 살기만 불편해. 그래서 이제부터는 가급적 노출 안하려 해”라며 웃었다.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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