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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심리전 첨병’ 확성기 시설, 내달 철거논의 본격화…5월 장성급회담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분단 기간 남과 북의 심리전의 첨병 역할을 한 확성기 방송 시설의 철거 논의가 본격화된다.

지난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판문점 선언에 따라 양측 갈등을 고조시키는 장비나 시설은 앞으로 철거될 예정이다.

판문점 선언에 따르면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라고 밝혀 확성기 방송 시설의 철거는 시간 문제다.

지난 21일 북한의 핵실험 중단 발표에 대응해 23일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발표했고 북측도 방송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 이동형 확성기 방송시설 [사진제공=연합뉴스]

또한 정상간 합의에 따라 5월 1일부터 방송 송출이 아예 중단된다.

남북이 40~50여곳에서 운용해온 확성기 방송 시설은 5월 열릴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철거 시기가 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장성급 회담에서 거론할 필요 없이 양측 군이 자발적으로 철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확성기 방송은 60년대 시작돼 최근까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거의 모든 전선에서 심리전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남한 뉴스와 생활상은 물론 라디오 드라마, 케이팝 등을 틀어 최전방 북한군 장병들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소프트 파워’ 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 군인들에 따르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고 마음을 돌린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군 사이에서도 자리를 잡자, 우리 군은 북한군 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며 ‘교감’을 더욱 확대했다.

예를 들어 다음날 비가 올 것으로 예보되면 “인민군 여러분, 내일 빨래하지 마세요”라는 날씨 정보를 전달했다.

또 “오늘 오후에 비가 올 것 같으니 빨래 걷으세요”라고 하면 실제로 빨래를 걷었다고 전하는 군 관계자들도 있다. 우리 측 확성기 방송은 이런 식으로 북한군들 사이에 신용을 높인 것이다.

북한군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뉴스를 전하는 첨병 역할도 했다.

2004년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사고 당시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이 뉴스를 북쪽으로 전달했다. 북한 내부에서 민감하게 다뤄져 일반 북한 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뉴스를 북한군 장병들이 먼저 접한 것이다.

북한군 병사들이 집에 안부 편지를 쓰면서 이 사고 소식을 편지에 담았고, 나중에 부대 검열에서 걸려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북한군은 최전방 부대에 준전시 상황 근무 지침을 내렸다. 당시 남북 고위급 합의가 이뤄지면서 긴장이 완화되자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이제 준전시 상태도 해제됩니다”라고 북한군에게 미리 정보를 전달하기도 했다.

고출력 확성기 방송의 가청거리가 심야시간대는 20여㎞에 달하기 때문에 밤 시간대에는 우리 가요가 많이 송출됐다.

다수의 탈북 군인들은 확성기 방송으로 송출된 남한 가요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말 국군심리전단이 김학용 국회 국방위원장에게 제출한 ‘대북 확성기를 통한 한국가요 현황’에 따르면 북한지역으로 남한 가요 100여 곡이 송출됐다.

이 중 가수 방미의 ‘날 보러와요’를 가장 많이 틀었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 나훈아의 ‘부모’,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 태진아의 ‘잘 살 거야’,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도 자주 들려줬다.

거미의 ‘You are my everything’, 소녀시대의 ‘힘내’와 ‘소원을 말해봐’, 슈퍼주니어의 ‘요리왕’ 등 아이돌 곡도 자주 송출됐다.

거북이의 ‘비행기’, 양희은의 ‘네 꿈을 펼쳐라’, 벗님들의 ‘당신만이’ 등도 자주 전파되는 노래였다. 2016년 인기 가요였던 이애란의 ‘백세인생’도 북녘으로 송출됐다.

남북은 2004년 6월 4일 제2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통해 ‘서해 우발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일대 선전활동 중지’에 대해 합의한 이후 최전방의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을 철거했다. 그러나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철거한 확성기 방송시설을 재구축했으며, 2015년 북한의 지뢰 도발로 재개했다가 같은 해 중단했다.

이후 2016년 1월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개시했다.

군은 1963년 5월 1일, 서해 쪽 MDL 일대에서 처음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했다. 1962년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을 시작한 것에 대한 대응 조치였다.

남북이 이번 판문점 선언에 확성기 방송 중단 시점을 ‘5월 1일’로 합의한 것도 55년 전의 우리 군의 시작일과 공교롭게 겹친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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