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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칼럼] 한은의 책무 추가가시기상조인 이유

최근 여야 정치권이 한국은행 설립 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에 함께 나서면서 논쟁이 커지고 있다. 한은 설립목적은 물가안정이 유일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1년에 금융안정이 추가됐다. 한은의 책무로 고용안정을 추가하자는 입법부의 목소리는 2015년과 2018년에도 여야 의원들이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현재 국회에서는 여야 상임위 간사가 공동 발의한 한은법 개정안을 포함한 3개의 유사한 개정안이 심의되고 있다.

저성장·저물가 현상이 ‘뉴노멀’로 고착화되면서 전통적으로 물가안정을 통화정책의 목표로 추구했던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변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실업률의 급변동에도 장기간 저물가의 지속은 물가와 실업률이 반비례하는 필립스 곡선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으로, 중앙은행의 역할과 목표도 재정립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대봉쇄로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하고 있고, 백신이 상용화된다고 하더라도 고용 문제가 쉽게 개선되기 어렵다고 예상됨에 따라 고용안정이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이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호주 중앙은행(RBA), 캐나다 중앙은행(BOC) 등은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동등하게 이중 책무로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 8월 연준은 완전고용이 달성될 때까지 물가가 목표치인 2%를 일정 기간 넘더라도 금리를 높이지 않겠다는 평균물가목표제(AIT)를 도입해 통화정책 목표를 물가에서 고용으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금리를 내리면 자산 가격이 오르고 신용 경로 등을 통해 소비와 투자가 늘어 그 결과로 고용이 확대되는 경로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은의 책무에 고용안정을 넣는 것은 시기상조이거나 제약이 존재한다. 첫째, 통화정책 목표로 3개를 명시할 경우 이들 간의 상충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같이 저물가와 과다유동성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두 책무인 물가와 금융 안정의 동시 추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고용안정까지 추가되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더 어려워진다. 저금리로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하는데 고용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을 경우 한은은 금리를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

둘째, 주요 선진국과 다른 노동시장 구조와 고용통계의 신뢰성이 문제다. 미국은 유연한 노동시장 구조를 갖고 있어 코로나19 사태로 실업률이 크게 오르자 파격적인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효과를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감안할 때 미국처럼 통화정책으로 고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또한 실업률은 국가 간 편차가 크고 구직의지가 반영되어 명시적 목표로 삼기 어려워 고용통계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왜곡된 고용통계를 바탕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한다면 큰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마땅한 정책수단도 별로 없는 한은의 책무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면 정부와 정치권이 대놓고 경기부양을 요구해 한은의 독립성이 훼손될 소지가 많다. 그러므로 한은의 주 책무는 물가안정이고, 추가 책무로 금융안정과 고용안정을 동시에 포괄하는 거시경제안정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이 우선이고, 궁극적으로 고용의 주체는 기업이므로 과감한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으로 기업이 스스로 고용과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 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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