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최초·최다…싸이, 기록의 ‘20년’
민소매·위협적 춤사위·여과없는 가사
2001년 등장과 동시에 ‘엽기가수’로 주목
2012년 강남스타일로 ‘월드스타’ 인기몰이
“B급감성 가사·안무에 가려진 ‘음악성’…
코믹가수 아닌 휴머니즘 담은 싱어송라이터”
‘흠뻑쇼’ ‘올나잇 스탠드’ 브랜드 공연 새 지평
등장과 동시에 주목 받은 싸이는 데뷔 당시 ‘엽기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엽기가수’로 출발한 그는 2012년 ‘강남스타일’로 대한민국 최초 빌보드 ‘핫100’ 2위를 7주간 지키며 ‘월드스타’로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싸이를 “코믹가수가 아닌 휴머니즘을 담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새로운 공연문화를 연 인물로 봐야한다”고 강조한다. [피네이션 제공]

BTS 이전에 싸이가 있었다. 누구도 넘지 못하리라 생각했고, 누구도 도달하지 못하리라 여겼던 기록의 소유자. 싸이의 이름 앞엔 BTS 이전까지 대한민국 빌보드 최고 기록, ( ‘아기상어’ 이전까지) 대한민국 유튜브 최고 기록 보유자이자 ‘월드스타’라는 수사가 따라왔다. 지난 20년 싸이가 걸어온 길은 기록의 행진이었다.

사실 싸이는 등장과 동시에 주목받은 스타였다. 2001년 1월. 어수선한 세기말을 보내고, 21세기의 문을 열던 당시 ‘싸이코(psycho)’에서 따온 싸이(psy)라는 예명의 가수가 등장했다. 1집 타이틀 역시 ‘싸이코 세상에서 온 싸이((Psy From The Psycho World)’, 팬클럽 이름도 싸이코. 스물넷의 혈기왕성한 싸이는 민소매를 입고, 위협적인 춤사위를 선보이며 ‘나 완전히 새됐어’ 라고 노래를 불렀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21세기가 시작하던 때에 엽기라는 키워드와 트렌드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자 새 시대의 얼굴이었다”고 말했다.

2001년 당시 주류 가요계는 1세대 아이돌로 호령했던 H.O.T가 해체하고 g.o.d가 활약하던 시절이다. 걸그룹 S.E.S와 핑클이 양대산맥을 이뤘고, 베이비복스가 나름의 위치를 점했으며, 보아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던 때다. 90년대 중후반의 분위기를 이어온 가요계는 여러 장르가 혼재한 르네상스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급격한 변화 앞에서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경직된 분위기였다. 개성 분출이 일탈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등장한 싸이는 상징적인 얼굴로 자리하게 됐다. “직설적이고 키치한 가사로 여과없는 음악”(정민재 평론가)을 들려주던 싸이에게 따라다닌 별칭은 ‘엽기가수’. 그야말로 “전향성을 띈 인물의 등장”이었다. 이에 더해 속칭 ‘쌈마이’ 매력의 장을 열어준 독특한 이정표를 남긴 인물이다.

데뷔와 함께 주목받았으나 싸이의 가수 인생은 다사다난했다. 2001년 11월 대마초 흡연으로 가수 생활의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이듬해 한·일 월드컵은 자숙 중이던 싸이를 방송가로 소환했다. 같은 해 9월 내놓은 3집 ‘마이(My)’의 수록곡 ‘챔피언’은 월드컵 분위기를 이어갔고, 각종 공연을 통해 싸이의 진가가 발휘됐다. 두 번의 군 생활을 한 비운의 ‘사나이’이면서도 이마저도 웃음으로 승화됐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싸이의 재입대는 ‘병맛’ 코드로 활용됐고, 셔츠를 듬뿍 적시는 축축한 ‘겨땀’(겨드랑이 땀)은 예능인들의 부러움을 사는 일종의 ‘웃음템’(웃음 아이템)이었다.

싸이의 음악 인생 분기점은 2012년이다. 국내 활동을 통해서도 무수히 많은 히트곡을 냈으나, 그 해 7월 발매한 정규 6집 ‘육갑(6甲)’은 글로벌 시장 진출의 신호탄이었다. 정 평론가는 타이틀곡 ‘강남스타일’을 통해 “히트곡의 범위가 전 세계적으로 넓어진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강남스타일’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였다. 발매와 동시에 국내 모든 음원 사이트 1위를 석권했고,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 팬들의 리액션 영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글로벌 인기의 ‘입질’이 시작되는 신호였다. 그러다 미국 힙합 가수 티페인이 남긴 “이 비디오가 얼마나 놀라운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트윗 한 줄에 전 세계가 반응했다. CNN이 ‘강남스타일’을 소개했고, 유튜브 조회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저스틴 비버 소속사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MC해머·마돈나와의 합동 무대를 선보였다. 빌보드 ‘핫100’에서 7주 연속 2위를 지켰다. 그 시절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를 ‘찢었다’. 현재까지 ‘강남스타일’은 유튜브 조회수 39억회를 기록 중이다. 싸이는 당시 월드스타이기 보다 ‘국제가수’로 불리길 바랐다. 과거 “월드스타는 이상하다”라며 “ ‘국제’라는 말이 주는 묘한 어감이 있다. ‘국제가수’라는 말을 사용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듬해 발표한 ‘젠틀맨’도 2013년 기준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본 동영상에 올랐고, 빌보드 ‘핫100’ 5위까지 기록했다. 이후 발매한 2014년 ‘행오버’(26위), 2015년 ‘대디’(97위) 등도 ‘핫100’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여전한 존재감을 보여왔다. 마지막으로 발매한 앨범은 2018년 정규 8집 ‘4X2=8’이다.

‘최초’, ‘최고’, ‘최다’의 수사를 안고 다닌 만큼 싸이에겐 기대치가 높다. 정 평론가는 “싸이의 가사는 공격적이고 솔직해 누가 쓸 수 있을까 싶은 내용이 많고, 안무도 톡특하고 세다”라면서 “그러나 ‘강남스타일’ 이후 ‘나팔바지’(2015년 7집), ‘뉴페이스’(2017년 8집) 등에 이르기까지 가사 콘셉트 등에서 글로벌 트렌드와 맞추려는 시도가 많아져 이전의 매력은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B급 감성의 가사와 안무로 ‘음악성’은 가려졌으나, 전문가들은 싸이를 “코믹가수 측면에서만 바라봐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선보인 다양한 음악에 담긴 휴머니즘, ‘흠뻑쇼’, ‘올나잇 스탠드’ 등의 브랜드 공연을 통해 제시한 새로운 공연문화가 가요계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정 평론가는 “싸이는 ‘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노래를 통해 휴먼 터치의 매력을 보여준 가수이자, 공연문화의 새 지평을 열어 엔터테인먼트의 하나로 정착하게 한 명실상부 공연의 강자”라고 평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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