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대사관 공사참사관.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버스가 빨리 공항 정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탈레반이 15시간 멈춰 세워서 25일 새벽 들어왔다. 다들 얼굴이 사색이 돼 들어왔는데….”

한국 정부를 도운 아프가니스탄인 협력자들과 그 가족 390여명의 국내 이송을 지원한 김일응 공사참사관은 27일 기자들과 화상인터뷰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작전명 ‘미라클’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영화 ‘모가디슈’를 방불케 한 일촉즉발의 탈출 상황을 전했다.

김 참사관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공항 인근 애비게이트 인근이 애초 공항에 입성한 아프간인 26명이 이용한 진입로였다며 “들어온 게 기적 같은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미국의 지원을 받아 버스로 들어오는 방안이 추진될 수 있었다”고 했다.

애비게이트는 26일(현지시간) 테러리스트 이슬람국가(IS)로 인해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구역이다. 이송작전이 하루 이틀만 늦어졌어도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었던 상황이다. 다행히 정부는 IS가 공항 인근에서 테러를 자행할지 모른다는 첩보를 사전에 입수해 이송작전 경로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스 이송이 순탄한 것도 아니었다. 애초 아프간 협력자 365명은 버스 6대에 나눠 타 24일 오후 순차적으로 카불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과 협의를 나눈 탈레반 측에서 아프간 협력자들의 여행증명서를 문제 삼는 등 통과를 막으면서 13시간 카불 공항 주변에서 멈춰섰다. 김 참사관은 “에어컨도 나오지 않고, 버스 창문이 밖을 볼 수 없게 돼 있어 사람들이 굉장히 불안해했다”며 “밤을 꼬박 새웠는데, 이때가 제일 힘들었던 시간 같다”고 했다.

김 참사관은 17일 탈레반의 예상치 못한, 빠른 카불 진격에 주아프간대사와 함께 마지막 교민 탈출을 안전하게 도운 뒤 카타르로 탈출했다. 하지만 탈출 닷새 만에 자원해 공관원 3명과 함께 다시 카불로 들어갔다. 아내와 사별하고 딸 둘이 있는 김 참사관은 딸들에게 카불에 다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리지도 못했다. 두 딸은 뉴스를 통해 김 참사관이 카불로 돌아간 사실을 확인했다.

김 참사관은 “아프간인들을 국내로 이송하려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카불 공항이 현재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들어가야만 했다”고 밝혔다.

김 참사관은 아프간인들의 국내 이송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감격의 포옹을 나눈 사진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참사관과 화제의 포옹을 나눈 아프간인은 대사관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이었다. 그는 “1년 동안 같은 과에서 근무해 친분이 있었던 인물이었다”며 “다시 데리러오겠다는 약속을 지켜 기쁘다”고 했다.

김 참사관은 아프가니스탄대사관 근무 전에도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 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정부의 아프간 재건사업을 추진해온 당사자 중 한 명이다. 김 참사관은 미국이 철군 발표를 한 직후부터 아프간 협력자들의 철수를 지원하기 위해 신원조회와 이송명단을 작성하는 작업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