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돌아온 ‘新자린고비’, ‘편의점 도시락’ 운명 바꾸다 [고물가, 돌아온 편도]
‘혜자롭다’ 의미를 활용한 한 모바일 게임 광고. [유튜브 캡처]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30년 전만 해도 편의점은 ‘담배 가게’로 불렸다. 매출의 절반 이상이 담배 판매에서 나왔다. 국내 편의점들은 일본을 들여다봤다. 답은 식당이었다. 1~2인 가구와 고령층이 많은 일본에선 편의점이 음식점 역할을 했다. 따라갔다.

덮밥 도시락. 20년 전 국내 편의점이 처음으로 내놓은 한끼 식사였다. 2002년 당시에만 편의점 도시락은 밥과 반찬을 섞어 먹는 ‘원 플레이트(One Plate)’ 스타일이었다. 당시 편의점 선진국인 일본 도시락과 닮았다. 컵라면과 같은 종이 용기에 밥이 담겼고, 그 위에 따로 포장된 불고기·낙지·제육볶음·야채를 한데 덮어 먹는 식이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지만 품질이나 맛의 다양성 면에서는 음식점을 따라가지 못했다. 대충 때우는 한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편의점 도시락의 한계였다.

GS25는 2010년부터 한국인 입맛에 맞는 편의점 도시락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출시 초기 ‘김혜자 도시락’.[GS리테일 제공]

정찬식 도시락. 지금의 편의점 도시락과 같은 형태는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등장했다. 경제 불황 속 고공행진하는 물가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구조조정에 떠는 직장인들에게 외식은 사치였다.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이들을 타깃으로 한 편의점 도시락은 값싼 메인 반찬에 김치나 단무지로 구성된 기존 덮밥류와는 차원이 달랐다. 흰쌀밥과 함께 가정에서 먹는 6~11개 정도의 푸짐한 반찬으로 즐기는 한국 밥상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도시락 값도 3000원이 채 되지 않았다. 저렴하게 먹는 든든한 한끼, 편의점 도시락은 이미지를 탈바꿈했다. 비로소 시장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두고 GS25, 당시 훼미리마트였던 CU, 세븐일레븐이 치열하게 경쟁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한국인 식습관에 맞춘 수십 가지의 편의점 도시락이 등장했다. 불고기, 제육볶음, 김치찌개, 오이냉국, 콩나물 해장국 등 저마다 장점을 갖춘 도시락이 출시됐다. 일본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가기 보다 한국의 정찬식 한끼 문화가 편의점에 도입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편의점 3사의 전략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세븐일레븐이 2015년 내놓은 ‘혜리 도시락’. [코리아세븐 제공]
CU가 2015년 출시한 ‘백종원 도시락’. [BGF리테일 제공]

차별화를 꾀한 편의점은 유명 연예인을 앞세웠다. GS25는 배우 김혜자를, 세븐일레븐은 걸그룹 걸스데이 멤버 혜리를, CU는 요리연구가 백종원을 내세운 도시락을 차례차례 내놨다. 당시에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 고 골목 곳곳에 편의점 점포가 새로 들어섰을 때다. 편의점 3사 도시락 연간 매출 신장률은 세 자릿수로 크게 뛰었다. 당시 ‘편도(편의점 도시락)족’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였으니, 얼마나 광풍이 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김혜자 도시락은 ‘알차다’, ‘가성비가 좋다’는 뜻의 신조어 ‘혜자롭다’를 탄생시켰다. 유행어 인기에 비례해 김혜자 도시락의 매출도 급증했다. 특히 2010년부터 2017년까지 40여 종의 상품으로 출시된 ‘김혜자 도시락’은 누적 매출만 1조원을 기록했다.

2017년 이후 주춤하던 편의점 도시락 매출은 지난해부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이 되면서다. 점심 식대가 1만 원을 넘기면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직장인들이 식당 대신 편의점으로 향했다.

2017년을 끝으로 단종된 ‘김혜자 도시락’이 6년 만에 재출시됐다. 재출시 20일 만에 100만개가 팔렸다. [GS리테일 제공]

편의점 도시락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 되면서 소비자 인식도 바뀌고 있다. 맛, 품질, 건강, 원재료 등에 대한 의문이 점차 수그러들고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업계는 식품연구소를 운영, ‘맵고 달고 짠’ 대중적인 입맛을 넘어선 도시락을 연구개발(R&D) 중이다. 1인 가구가 급등하고, 다양한 취향을 가진 MZ세대가 주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바뀐 흐름이다.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를 겨냥해 ‘밥믈리에’가 엄선한 프리미엄 도시락이 출시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최근 2~3년 사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실제로 현재 GS25 도시락 15종 중 1종을 제외한 14종이 정찬류 도시락이다. 그동안 ‘마의 4900원’이으로 불리며 편의점 도시락의 가격 저항선으로 여겨진 5000원 이상의 도시락 구성비도 62%가 넘는다. 양호승 GS리테일 데일리푸드팀장은 9일 헤럴드경제와 만나 “지금의 10대가 직장인이 돼서도 찾게 되는 든든한 한끼가 편의점 도시락이 되도록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며 “다소 공정에 손이 많이 가더라도 ‘집밥’처럼 음식 퀄리티를 올리는데 집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dsu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