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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고, 일 더 해 메우라고?"…'주69시간제' 등돌린 MZ
실질임금 지난해 첫 감소...MZ "52시간 일해도 생활고, 해결책은 '일 더 해'?"
"출퇴근 사이 11시간 휴식 없이" 발표…지난 8일 62시간 연속 근로자 사망 발생
한 달 휴가 못 쓴다 지적에 고용장관 "MZ세대 회장 나오라 해"..."현실 모른다"
대통령실 "연장근로 해도 주60시간 넘지 않도록 하겠다" 발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소속 노조를 만나 긴급 면담을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부가 추진하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이 MZ세대들의 반발에 제동이 걸렸다. 바쁠 때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일하고, 안 바쁠 때 ‘한 달짜리 휴가’도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고용노동부 안에 대해 MZ세대들이 반대하면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MZ세대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나섰지만,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그간 “MZ세대 중에는 연장근로를 선택해 임금을 더 얻고 싶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이들은 “주 52시간 일 했는데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내놓는 해결책이 결국 ‘연장근로’냐”고 반발하고 있다.

▶고물가에 줄어든 임금=1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이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줄었다. 임금 상승분보다 물가 상승폭이 더 컸던 탓이다.

[고용노동부 제공]

지난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명목임금 총액은 386만9000원으로 전년 대비 4.9%(18만1000원) 증가했다. 그러나 물가 수준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전년 대비 감소했다.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59만2000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전년 대비 0.2%(7000원) 줄어든 금액이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는 5.1% 상승했다. 명목임금 인상률을 뛰어넘으면서 실질임금은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이에 비해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전년보다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가장 긴 편이다. 지난해 근로자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1904시간으로 집계됐다. 전년에 비해 소폭(24시간, 1.2%) 줄었는데, 근로일수가 2021년보다 이틀 줄어든 영향이 컸다. 2021년 기준 한국 전체 취업자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OECD 평균(1716시간)보다 199시간 길다.

▶대학생들 “해결책이 ‘일 더 해’뿐이냐?”=MZ세대들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에 반대하는 근저에는 이번 개편안이 ‘고물가로 실질임금이 감소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내놓은 대책이란 인식이 깔려있다. 실제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서울대 게시판에는 “주 52시간 일을 했는데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내놓은 해결책이 ‘그럼 넌 더 일 해’ 뿐이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게시글 작성자는 특히 “사회 분배 체계에 문제가 있는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은 취약계층이 있는지, 회사가 월급을 제대로 계산해 주는지, 물가가 지나치게 높은 게 아닌지 짚는 게 먼저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출처=에브리타임]

게다가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한 주 64시간만 넘지 않으면 퇴근과 출근 사이 연속 11시간 휴식을 주지 않아도 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24일 열린 토론회에서 “저도 야근을 하다보면 퇴근과 출근 사이 연속 11시간 휴식을 보장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건강권’을 무시한 처사라는 여론이 높다. 4주 평균 64시간은 산재보험 과로인정 기준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지난 8일 서울 종로구에서 사흘 간 퇴근하지 못하고 62시간 연속 일을 하던 빌딩 관리업체 소속 보안팀장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개편안대로라면 일반 근로자도 나흘 연속 62시간 일할 수 있다.

▶건강권 훼손 뿐 아니라 소득까지 감소=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연 단위로 확대하면 수입은 오히려 줄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민주노총 법률원에 따르면 현행 주 단위인 연장근로 단위를 바꿔 분기별로 선택하면 연장근로 총량의 90%, 반기는 80%, 연 단위는 70%까지만 가능하다. 근로시간 총량은 줄어든다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수당은 외려 줄어든다. 관리 단위 확대 전엔 1년에 360만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를 연 단위로 확대하면 360만원의 70% 수준인 252만원을 받는다. 108만원이 줄어드는 것이다. 결국 사용자 입장에선 근로자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몰아주기 노동’을 시키면서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독(도크) 화물창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연합]

이번 정부 개편안의 전제조건은 노사 합의다. 하지만 우리 노조 조직률은 14.2%에 불과하고, 이 중 30인 미만 사업장의 조직률은 0.2% 수준이다. 노조 조직률이 46.3%에 달하는 대기업 근로자들은 그나마 협의 과정을 거칠 수 있지만, 중소기업 근로자는 여지가 없다. 가뜩이나 지난해 고물가에 따른 실질임금 하락은 이들 300인 미만 사업체에 집중돼, 3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명목임금은 6.1% 증가한 592만2000원인 반면, 300인 미만 사업체는 4.4% 상승에 그치며 346만2000원에 머물렀다. 결국, 규모가 작고 영세한 기업의 근로자들은 몸도 해치고 돈도 더 벌지 못하는 ‘구조’로 설계된 개편안이란 주장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이른바 연장근로를 모아뒀다가 휴가로 쓸 수 있는 근로시간저축제다. 바쁠 때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일하고, 안 바쁠 때 ‘한 달짜리 휴가’도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현실에선 ‘한 달짜리 휴가’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연차 휴가도 모두 소진하는 기업이 40.9% 수준인 탓이다. “요새 MZ세대들은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 (해서) 성과급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됐느냐(라고 하는 등) 권리의식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게 이정식 장관의 설명이지만, 장관의 이 발언은 오히려 MZ세대의 반발만 샀다.

이 장관은 전날 MZ노조협의체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와 만나 이번 정부 개편안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지만, 양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새로고침은 논평을 통해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국제 사회 노동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장관은 이날 역시 서울지방고용노동에서 2030 자문단과 간담회를 열고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근로시간 개편방안에 대해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60시간 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 안상훈 사회수석은 “대통령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입법예고된 정부안에서 적절한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으로 여기고 보완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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