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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들의 변질된 공모주·공매도…개미는 ‘호구’가 아니다 [홍길용의 화식열전]
프리IPO로 FI에서 자금조달 후
상장으로 대중에 상환부담 전가
공모가 부풀린 ‘먹튀 조달’ 늘어
공매도도 투기·약탈 수단되기도
시장 신뢰기반 위협…보완 필요

“지난해 경영실적은 매출 564억원, 영업이익 15억원, 당기순손실 2275억원입니다. 하지만 내년과 2025년에는 매출이 3715억원, 6195억원으로 커지고 순이익도 948억원, 19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예상을 근거로 기업가치를 추정해 주식을 발행하겠습니다. 적정 가격수준은 나스닥에 상장된 미국기업과 비교했습니다. 이번 주식은 코스닥에 상장되지만 값은 나스닥 만큼 쳐주세요”

7일 상장하는 파두(Fadu)의 주관사 NH투자증권이 펼친 투자권유 논리다. 공모가는 2년 후 이익 전망치까지 당겨온 기업가치에 기초했다. 여기에 우리 보다 주가순이익비율(PER) 배수(multiple)가 훨씬 높은 나스닥 비교기업(Broadcom, Microchip Technology, Maxlinear) 평균치를 적용했다.불확실한 미래가치를 현재가치로 둔갑시켰고 한국과 미국의 시장환경 차이도 고려하지 않았다.

파두는 메모리(저장) 반도체(SSD)의 조절장치(controller)를 설계하는 기업(Fabless)이다. 올 1분기 매출이 176억원 영업손실 43억원이다. NH투자증권이 예상한 올 추정 매출은 1203억원이다.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제품이 올 하반기부터 대규모로 팔릴 것을 전제로 했다. 올해 간신히 적자를 벗어나는 회사가 당장 내년부터 25%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거둘 수 있다고 NH투자증권은 자신했다.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파두의 기관 수요예측은 약 363대1의이었다. 배정받은 물량을 당장 팔 수도 있다는 미확약물량 비중도 3분의2가 넘었다. 청약경쟁률도 79대1에 그쳤다. 파두의 덩치가 꽤 큰 점을 감안해도 올해 흥행에 성공한 코스닥 상장 기업과 비교하면 꽤 저조한 수치다.

상장전 파두의 전환사채(CB)에 투자했던 사모펀드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은 이미 주식전환권을 행사했다. 전환가격은 주당 4만333원이다. 공모가(3만1000원)은 물론 이번 공모 과정에서 평가된 주당기업가치 4만903원보다 높다. 기관들이 꽤 높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장 후 발행주식의 38.92%가 즉시 유통물량이다. FI들에게 상장은 투자금 회수의 주요 통로다.

한때 공모주 투자가 인기였다. 천문학적 자금이 몰리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대부분 ‘불꽃놀이’였다. 공모가 보다 주가가 낮아진 종목들이 대부분이다. 청약으로 받은 물량은 상장 직후 반짝 급등 때 파는 게 최선이었다. 대부분의 수혜는 신주를 받은 쪽이 아니라 판 쪽이 누렸다. 발행사는 많은 돈을 모았고 상장 직후 시장의 관심을 틈타 일부 임직원은 주식매수권(stock option)으로 ‘떼돈’을 벌었다.

최근 공모주를 보면 공통적으로 사전 기업공개(pre-IPO) 과정을 거친 곳들이 많다. 상장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한데 돈은 급하니 일단 사모펀드나 기관투자자에 신주나 주식형사채를 발행해 필요 자금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 평가가 이뤄지고 이후 상장 때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프리IPO가 과연 자본 조달일까, 차입일까? 공모 투자자는 무슨 이익을 얻을까?

프리IPO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부분 FI다. 상장으로 투자회수하는 구조를 짰다. 회사는 상장을 담보로 FI에 돈을 빌리고, 원리금은 다수의 공모투자자가 갚는 형식이다. 발행사와 FI는 물론 발행사에게 수수료를 받는 상장주관사도 공모가가 높을수록 이익이다. 미래실적에 기댈 수록 공모된 주식의 가치가 발현될 때까지는 오랜시간이 필요하다. 공모 투자자들은 공모가가 높을 수록 불리해진다.

공모주는 주식을 팔아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자본시장의 고유수단이다. 기업가치를 부풀려 FI에서 비싸게 끌어온 돈을 갚아주는 곳이 아니다. 공매도의 순기능은 가격발견과 위험회피인데 투기수단과 대중투자자의 이익을 빼앗아가는 수단으로도 악용되는 것과 비슷하다. 일부 사모(private) 자본이 공매도와 공모주 제도를 활용해 대중을 대상으로 일방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게 문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른바 기관투자자, 전문가의 잘못들과 부진한 성과가 드러났다. 이들의 예측도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기관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 하락했다. 모바일투자와 상장지수펀드(ETF) 활성화로 개인들의 시장 접근 방법이 다양해지졌다. 미국의 빅테크 쏠림, 국내의 2차전지 관련주 급등락 과정을 보면 개인들은 기존의 기관과는 상당히 다른 접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시장은 참여자들이 만드는 것이다. 투자판단은 각자의 책임아래 이뤄지는 것이며 어느 일방이 옳을 수 없다. 다만 상대를 ‘하수’나 ‘호구’로 보고 비합리적 조건의 거래를 강요하게 되면 곤란하다. 시장은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고 거래는 신뢰가 근간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거래가 아닌 쟁탈이 된다. 거래상대방(counterpart)과의 신뢰를 깨뜨리는 빗나간 행위와 시도들에 대한 규제가 필요해 보인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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