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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개량신약 세계적 기업 망가뜨린 한국형 상속세

모녀와 아들 형제가 대결한 한미그룹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아들 형제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상처뿐인 승리다. 1조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바이오의약품산업 진출로 ‘시가총액 200조원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지만 혈육 간 싸움에 내몰려 허약해진 기초체력부터 다져야 할 형편이다. 최고점 대비 반 토막 난 주가가 냉엄한 현실을 말해준다. 잇단 계약 해지에 핵심 연구·개발(R&D)인력이 빠져나가면서 미래 개발역량도 떨어졌다. 당장 2000억원대 상속세 마련을 위한 자금 조달도 발등의 불이다.

한미그룹은 징벌적 수준으로 높은 상속세율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의 대주주 상속세 실질세율은 최고 60%에 달해, 단연 세계 1위다. OECD 평균의 두 배를 웃돈다. 국내 콘돔업체 유니더스, 밀폐용기업체 락앤락, 손톱깎이업체 쓰리세븐 등이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경영권을 넘겼다. 한미그룹의 경영권이 흔들린 결정적 계기도 유족에게 부과된 총 5400억원의 상속세다. 모녀 측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속세 문제해결을 위해 지난 1월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하자 아들 형제가 법원에 통합작업 중단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갈등이 극대화했다. 신주 발행을 통해 기업을 통합할 경우 아들 형제를 포함해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형제 측에선 경영권을 OCI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한미그룹 주력인 한미약품은 한국에선 불모지였던 개량신약 부문 개척자로, 2015년 한 해에만 글로벌 제약사들과 6건의 계약을 맺는 등 총 8조원의 규모의 기술 수출에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2020년 창업주 별세 후 대주주들은 상속세 문제에 매달리느라 신약 개발 등 회사 경영은 뒷전이 되고 말았다. 장남인 임종윤 전 사장은 “한미그룹은 팔지도 않을 상속 주식에 부과된 세금 때문에 의미 없이 가업이 망가진 경우”라고 하소연했다.

법인세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상속세는 자국 우량 기업을 해외로 내모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상속세율이 70%에 달했던 스웨덴의 간판 제약사 아스트라는 영국 제네카에 헐값에 넘어갔고, 국민 기업 이케아는 네덜란드로 본사를 옮겼다. 스웨덴이 2005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30%)로 전환한 배경이다. 상속시점에 상속세를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상속재산을 처분해 수익이 발생하면 그때 차익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기업 경영을 유지할 경우 상속 부담을 낮춰주고 경영의 영속성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2000년 이후 24년째 바뀌지 않고 있는 한국의 상속세도 스웨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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